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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Apr 25. 2022

이별 9주차: 고통이 디폴트

한동안 이별에 관해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상담 장기 경험자로서 자기 분석한 결과를 나열해보겠다. 첫째, 최근 한 연예인에 입덕하고 그가 출연한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 수면 시간이 줄어들었다. 하루에 최소 6시간 이상의 수면 시간을 지키던 내가 드라마와 영상을 보느라 4~5시간으로 수면 시간이 줄면서 감정이 널을 뛰기 시작했다. 둘째, 첫 번째 이유에서 언급했던 드라마의 내용이 큰 사고에서 생존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모두 상실을 견디고 있다. 죄책감과 그날의 고통이 계속 나온다. 셋째, 이별 후에 한창 힘주고 살았는데 헤어진 지 두 달이 넘어가자 긴장이 풀리고, 이제야 상실을 실감하고 있다. 1~3의 대환장 콜라보.

처음 이별에 대해 쓰자고 마음 먹을 때와 이번 글쓰기 수업을 등록할 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람답게 고통은 극복의 대상이며 술이나 게임에 빠지는 건 도피니까. 남들이 중독된다는 것들에는 흥미를 못 느껴서 생산적인 취미 활동으로 이별을 이겨내려고 했다. 글로 표현해서 감정을 털어놓고 신체적 활동량을 늘리면 원래의 컨디션으로 복구되리라. 그런데 축축한 한 주를 지나고 나니 인정해야겠다. 감정은 늘 생각을 이기고, 건강한 몸에도 건강하지 못한 마음이 깃든다.

글을 쓰려면 생각을 해야 하는데 생각하기 싫다. 아무리 곱씹어도 달라지지 않는 결말.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실패한 것 같아요. 최선을 다했는데 헤어졌으니까요. 왜 헤어져야 했는지, 당시에는 알 것 같았는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무력하고 화가 나요.”

상담 만능주의자로서 퍼뜩 상담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예약을 잡아뒀지만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서른에 이별에 징징대는 꼴이라니. 글에서는 솔직해지자고 약속했으므로 휴지통으로 보낼 각오로 쓰자면, 내가 이성으로서 충분히 매력이 없어서 헤어졌다는 생각까지 든다.

올 초 상담을 끝낼 때 이별의 징조가 있었다. 걱정하는 내게 선생님은 “ㅎㄹ씨는 잘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거예요. 주위에 도와달라고 할 수도 있고요.” 나는 그때 씩씩한 얼굴로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 확신에 차서 “맞아요, 생각보다 저를 도우려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제가 알아요.”라고, 겁도 없이 내뱉었다. 상담하는 한 시간 내내 선생님과의 이별이 두려워 울었으면서. 앞으로 몇 달간 슬픔에 계속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애써 무시하면서 “전 해낼 거예요.”라고.

빠졌던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는 ‘할멈’ 역할로 나문희 배우가 출연한다. 그는 사고로 힘들게 사는 ‘강두’와 사고 직후 채권자와 채무자로 만난 사이지만 지난 10년간 강두의 고통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사람이다. PTSD와 10년이 지나도 쑤시는 다리 통증, 환각으로 고통받는 강두가 자신은 인생에 좋은 기억이 없다고 하자 할멈은 말한다. “내가 우리 서방 잃고 40년 지내면서 언젠가 다 잊고 괜찮아지겠지 기다리며 살다가 알게 된 게 뭔 줄 알간? 그런 날은 안 와. 억지로 안 되는 건 그냥 둬. 애쓰지 말라. 슬프고 괴로운 건 노상 우리 곁에 있는 거야. 받아들여야지 어째.” 드라마를 멈췄다.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나는 소리 내며 아이처럼 울었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게, 한심해하는 것 말고는 나를 달랠 줄 모르는 이 상황이 무서웠다. 고통을 받아들이면 이별도 받아들여야 하고 영영 끝이라는 의미인데 그걸 어떻게 소화할지를 모른다.

이별 하나 떨쳐내지 못하는 나를 미워한 시간이 두 달이 넘었다. 이깟 이별, 좋았던 기억만 있던 것도 아니면서 좋았을 때가 불쑥 떠오르는 것도, SNS에서 걔 소식이 뜨면 부리나케 확인하는 것도, 이미 끝난 걸 알면서 재회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마음이 찌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이런 마음은 장기체류자처럼 자리 잡고 오래 안 비킬 것이다. 할멈의 말대로 억지로 몰아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버텨도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 감정은 희미해질 것이다. 그런 날이 안 온다고 해도 올 것이다. 슬프고 괴로운 건 노상 우리 곁에 있으므로 다른 슬픔과 괴로움이 이 자리를 메우거나 내 엉덩이를 걷어차며 일어나게 할지 모른다.​


같은 드라마에서 “사는 건 후회와 실패의 반복”이라는 할멈의 말에 강두는 “그럴 거 살아 뭐하냐”고 묻는다. 이에 할멈은 “더 멋지게 후회하고 실패하려고”라고 답한다. 40년간 한 사람을 마음에 묻고 사는 마음을 감히 짐작할 수 없다. 그런 상실을 겪고도 후회와 실패에 뛰어드는 심정을 모르겠다. 그래도 저 말에 위로 받았다. 대사가 아닌 말으로 들렸다. 섣불리 괜찮아 질 것을 단언하는 말이나 구석으로 몰아세웠던 자학보다 나았다.

아프다. 괴롭고 슬프다. 후회되고 미련이 남는다. 실패했다. 한동안 이 말들과 부대낄 것이다. 지났나 싶다가 다시 걸려 넘어질 것이다.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게 아니니까. 실패하지 않았다고 억지 부리지 않을 것이다. 실패해도 되니까. 또 실패할 힘이 생길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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