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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Oct 24. 2022

변화는 느리게 온다

다이어트 강박에서 벗어나기

방콕에   거의 1년이  되어 간다. 몸무게는 재지 않아 모르겠지만 살이 쪘다. 사이즈가 변했다는 것은 여러가지 신호- 헐렁하던 옷이  낀다던가, 팬티가 갑갑하다던가로 진즉 느꼈지만 이렇게 빡세게 사는데 다이어트까지 해야하냐는 생각이 들어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저히 무시할  없는 이상이 찾아왔다.   전부터 몸이 이상했다. pms 배란통이 거의 없는 편이었는데 점점 강해지고, 생리 주기가 들쭉날쭉하더니 결국 35일을 넘어서고 말았다. 생리 주기 변화를 가볍게 넘길  없는  20 초반에 다낭성 난소 증후군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장은 문제가 없다는 말에 잊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 검색해보니 생리주기가 35일을 넘으면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으니 내원하라고 했다. 안돼, 한국 방문까지  달이나 남았는데! 계속 검색한 끝에 나온 결론은 그나마   있는게 체중 조절이라는 것이다. 먹으려고 태어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체중 감소는 생각하기도 싫다. 20 초반에 극심한 다이어트로 건강을 잃은 적이 있어서그 단어를 내내 피해다녔다. 물론 2~30 여성으로 살며 체중 문제는 피해다닌다고 피해다닐  없었다. 식이 조절은 안하지만  3 필라테스 학원을 다니고  2 축구,  5 이상 5km 러닝을 했다. 먹는  줄일  없다면 운동량을 늘리기, '먹으면서 체중 감소 강박을  느끼는' 다이어트였을 뿐이다.



그리고 방학을 맞아 한국에 갈 날이 다가오고 있다. 1년 간 얼굴을 보지 못한 가족과 지인들을 만나야 한다. 엄마아빠는 1초 안에 스캔하고 한 마디로 평가할 것이다. 이미 타버린 피부는 어떻게 돌릴 수가 없으니, 거기에 살 이야기까지 덧붙이고 싶지 않다. 해외 생활이 고단하다는 말은 자주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고단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방콕에 오기 전 몸무게로만 돌아가자는 심정으로 체중 조절을 시작했다. 좋은 운동 선생님을 만난 것도 한 몫 했다. 서른아홉살의 운동 선생님은 목적을 물었고, 당신 같은 근육을 갖고 싶다는 말을 듣고 모든 걸 이해한 것 같았다. 그는 몸무게나 식단에 관해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일주일에 세번 사근사근 웃으며 근육을 키워주었다. 운동이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는 걸 그녀 덕분에 처음 알았다. 대놓고 그의 팔근육을 관람했다. 선생님은 몇키로나 들 수 있어요? 라고 묻고 양 손에 8키로 덤벨을 든 그를 입을 벌리고 쳐다봤다. 태어나서 한 번도 또래와의 팔씨름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상체는 말랐고 하체는 좀 있는 편, 이라는 게 스스로가 내린 몸에 대한 전부였다. 그런데 그녀와 함께 운동을 하다보면 등과 어깨와 팔 근육을 너무나 갖고 싶어 졌다. 얇은 것보다 강한 몸, 내가 양 손으로 겨우 드는 무게를 한 손으로 드는 박력. 저걸 갖고 싶었다.




그렇게 체중이 줄자 신기하게 생리 주기가 돌아왔다. 목표 달성이니 체중 감량은 멈춰야 맞는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빼고 싶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입이 터진 것처럼 한번 체중 조절을 시작하니 이 강박을 조절할 수가 없다. 허기와 운동량을 더 버틸 수 있어, 가보자, 더 줄일 수 있어! 라고 스스로를 몰아 붙인다. 마른 근육을 키우는 것으로 다이어트의 트랜드가 바꼈다는데 지금 하는 짓이 그것과 뭐가 다르지? 근육을 가지려는 건 내 욕구가 맞나? 이 시대 미의 기준에 맞추려는 노력인가? 명료하게 답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미 하나로 엉켜 무엇이 내것이고 사회로부터 왔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한창 극단적으로 체중을 감량하던 때, 헬스장 탈의실에서 머리를 말리는 여러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마른 사람이 나라는 걸 깨닫고 꽤 기뻤던 기억이 난다. 친구와 밖에서 식사를 한 끼 하려면 그 전에 몇 끼 분의 칼로리를 계산하고 줄이던 때였다. 몇 달을 극단적으로 먹지 않다가 치팅 데이를 정해 배가 아플 때까지 먹었다. 하숙집으로 돌아와 소화제 두 통을 먹고 모든 걸 게워내고 싶다는 생각과 스스로에 대한 혐오로 몇 시간을 보냈던 스무 살 때 이야기다. 겨우 고등학생이던 동생에게 자기 관리를 운운하며 살을 빼라고 해서 동생을 울리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너를 위한 이야기'라고 말했었다.



11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다이어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두렵다. 몸무게 앞자리와 먹는 양에 예민하다. 거울 앞에서 배에 힘을 줘 넣고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예상보다 더 뚱뚱할까봐 남이 찍은 내 사진 보기가 무섭다.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났을 때 내 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지를 신경쓴다. 이런 마음은 언제쯤 사라질까? 사라지기는 하는 걸까. 막막하다.




어제 피티를 받으면서 화가 났다. "팔굽혀펴기는 아주 마르고 체격이 작은 남성들도 연습 안 해도 두자리수는 거뜬히 하는 동작이잖아요, 저는 왜 이렇게 못하죠?" 하고 따지자 선생님은 은은하게 웃으며(선생님은 늘 은은하게 웃는다. 이 표정으로 '하나 더요!' 를 외친다) "아무도 연습하지 않은 걸 잘하진 못해요."라고 말했다. 청소년기에 팔굽혀펴기를 하려고 애썼던 기억은 전혀 없으므로,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무 살과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다르다. 매일 몸무게를 재고 줄지 않으면 불안해서 그날 식사량을 당장 줄이던 스무살에 비해 지금은 어떤 변화는 아주 느리게 온다는 것을 안다. 더, 더 하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여도 말릴 사람이 없었으나 요즘은 그렇게 매일하는 건 체력에 부친다고 말하는 운동 전문가가 옆에 있다. 그때는 여자들은 다 사십 몇키로 아니냐는 말을 농담처럼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요즘은 외모에 대한 발언은 무례하다는 것이 사회의 상식이 되었다. 어떤 변화는 느리게 온다. 발가락을 적시고 어느새 마음을 푹 물들일 때까지 밀려오는 변화를 천천히 느낄 것이다. 더 무거운 덤벨을 들고 무릎을 대지 않고 팔굽혀 펴기 두 자리수를 해내다보면 언젠가,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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