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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Apr 18. 2022

까부는 교사

중학생 때 늘 까부는 애였다. 반에서 웃기는 애. 체육부장.

중학교 1학년 때는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친구들이 내 주위로 우 몰려들었다. 별 것 아닌 이야기를 하는 열네 살 사이에서 내 눈은 웃기고 장난칠 포인트를 찾느라 바빴다.​

주로 뛰어다녔다. 걷다가도 앞에 친구가 있으면 툭 건드리고 냉큼 달려가는 식이었다. 친구들은 내가 웃긴 애라고 했고, 열네살은 그런 칭찬에 취하는 나이이므로 재치를 온 천하에 뽐내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웃긴 사람이 되지 마라. 우스워보여."라고 말했다. 과거의 기억이 늘 그렇듯 맥락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진지한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었고 우리 집에서 가장 적게 말하지만 가장 강한 사람이었으므로 그 말에 뜨끔했다.​

아씨. 어떻게 알았지.​

부모는 자식의 불안을 은근히 건드려 증폭시키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낄낄대다가 조그맣게 피어오르는 '친구가 나를 무시하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을 건드렸다. 건드리는 순간 끝장인데.

그래서 좀 진지한 사람이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친구가 "너는 나중에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아."라고 말할 정도로. 그 말에 왠지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았다는 걸로 이미 까불기는 글렀다.​

하지만 가락은 어디 가지 않는다. 눈치보며 까불고 좀 진지한 인간으로 살았다. 그러다 원하지 않는 장난(너는 장난인데 나는 안장난)을 당하면서 역시 웃기면 무시당하나, 생각했다. 그건 그냥 걔네가 못된 건데 그때는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우주가 나를 축으로 돌아가는 줄 아는 나이 아닌가.​

대학생이 되니 까부는 여자애는 미팅 판에서 좀 인기가 없었다. 20대 초반에는 신촌에서 같잖게 대학 fm을 외치는 애들한테 애프터 받는 게 되게 큰 영광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교사가 되어 버렸다.


이건 진짜 (존나) 망한 거다. 까부는 교사로 살기는 쉽지 않다. 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까부는 직장인, 까부는 엄마, 까부는 의사, 까부는 은행원... 그냥 20대 후반 이후로는 까불기가 어렵구나.

정신 차려보니 골든 타임을 놓치고 진지한 어른이 되었다.

나름대로 까부는 판을 찾아 다녔는데 이미 진지함이 축적되어 걷어내기가 어려웠다. 까부는 건 쿨하지 않다고 여겼다. 쿨한 게 뭔지, 쿨해본 적이 없는데 지향해야 하는 그것 말이다.

​​

그러다 한 작가의 책을 읽었다. 그는 무지 까분다. 까부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 대중 앞에서도 까분다. 정성스럽게 까불어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한다.

한 가수의 팟캐스트와 책을 읽었다. 선을 살살 넘으며 웃긴다. 어느 날엔 너무 웃겨서 러닝머신 위에서 컥컥거리며 웃었다. 스스로 웃긴 걸 엄청나게 자랑스러워한다.

되게 쿨하고 멋진 개그우먼들이 나타났다. 나이 따위는 굴하지 않고 내공 있게 까분다. 서로를 놀리고 장난을 걸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벌컥 화를 내고 또 그런 자신이 웃겨 죽는다. 그때 그들의 표정, 익히 아는 얼굴이다. 한창 장난에 열 올릴 때의 나.

못 웃기면 분하던 내가 좋았다. 넘실대는 웃음 사이에서 사는 거 재밌었다.​

무시당하면 그게 내 탓인가. 무시당하는 게 뭐 그리 큰 일이라고. 세상에는 까불다가 무시당하는 것보다 큰 일이 많다. 기후 위기, 이산화탄소, 코로나19, 뭐 그런거...​


웃기는 것도 연습과 짬빠가 필요하다.

한동안 안 했더니 애들한테 한마디 던지고 설명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원통하다.

갈고 닦아서 까부는 교사가 돼야지.​

솔직히 이걸 글로 쓰고 앉아 있다는 게 이미 망했나 싶긴 하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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