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리 Oct 24. 2022

홀로서기

지푸라기를 붙잡는 마음으로 출국할 ,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거리는 중요하지 않아요. 마음의 거리두기가 중요해요."라고 말했다. 떠나온  1, 물리적 거리두기는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이제 알겠다. 부모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들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부모가 나를 종속한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자라지 못했다는 기분이 든다. 남들이라면 의미 없게 들었을 말에 흔들리고 과하게 스트레스를 받는게  증거겠지. 권위적인 아버지의 장녀로 순종적으로 살다가 결혼을 반대하자 처음으로 부딪쳤다는 동료가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남편은 우리 가족을 만나 보고 그러더라고요. 다들 과하게 아버지에게 맞추는  같다고. 그러지 않아도  상황에서도."  말을 듣고 가부장적인 권위가 얼마나 가족 구성원을 자라지 못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외부인에게는 별게 아닌 지를 실감했다.


아버지쪽 가족 행사에는 늘 손녀들이 빠져있다. 손자들은 결혼한 아내를 데리고 몇 시간이 걸려도 참석하는데 비해 다 자란 손녀들은 자발적으로 참석하지 않는다. 그건 이 집안이 얼마나 여성들에게 각박하고 불편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어색한 변명을 하며 가족 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그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


아빠는 최근 결혼 이야기에 화를 내는 나에게 "아빠가 겨우 이런 이야기도 못 하냐? 이런 걸로 투덕거릴수도 있지"라고 말했다. 언제부터 그와 내가 그런 사이였는지 생각했지만 우리는 그런 적이 없었다. 그는 명령을 하고, 나는 복종하거나 아니면 화를 내서 그 자리가 파국이 되거나 했을 뿐이다. 지금 나는 결혼이 필요하지 않다. 아빠는 설명을 요구하지만, 설명하고 싶지 않다. 그는 민주적인 척하고 싶을 뿐이니까. 인생에 누구를 들이거나 들이지 않는 일은 온전히 내 판단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를 인생에서 걷어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하지만 더이상 부모 이야기를 하며 징징대지 않으려면 마음에서 그들의 자리를 축소하는 연습을 해야한다. 의무감에 하던 일들을 놓아야 한다.


그런데 부모를 마음에서 밀어내는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 연락은 몇 번 정도 하면 되고요, 고집을 부리거나 강압적으로 말하는 순간 전화를 끊거나 그 자리를 떠나면 됩니다. 그리고 사과 연락 하지 마시고요. 다른 가족을 통해 우회적으로 오는 압박은 다 무시하면 돼요. 그러고도 잘 살면 됩니다. 그거만큼 강한게 없으니까요.


어느 날에는 잘 살 수 없을 것이다. 부모가 필요하고 어그러진 관계를 원망할 것이다. 그런 날에는 실컷 미워하고 다시 내삶으로 돌아오면 된다. 간단하게 썼지만 매 순간 어렵고 망설일테지. 그래도 삼십 대에는 마음도 홀로 서고 싶다. 조금 가볍게 살고 싶다. 힘이 생겼으니까. 자립하기 위해서 평생을 다 썼으니까. 사실 부모가 베푼 모든 것들은 다 한 인간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으므로.

이전 13화 엄마는 안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