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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x May 17. 2022

'나의 해방일지'... 그들의 해방사

"밝을 때 퇴근했는데 집에 오니까 밤이야. 나한테는 저녁이 없어."

기정이 말한다.


"설렌다고?  아니니까 설레는 거야. 그냥 내 거면, 응 그래 내 거구나 하지 설레지 않는다고."

창희가 말한다.


"나를 추앙해요. 나는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미정이 말한다.


"왜 여자들은 항상 뭘 달라고 하지? 뭘 맡겨놓은 사람처럼말야."

구 씨가 말한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계란의 노른 자인 서울에서 일하며 집은 하얀 자인 경기도에서 출퇴근하는 삼 남매와 그 주변인 이야기다. 현대의 도시인들은 누구나 속박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어렸을 때는 제도권 속의 교육체제에 소속되어있다가 나이가 먹으면 밥벌이를 위해 직장에 적을 두어야 하고, 가정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한다. 혹자는 일부일처제가 권력층이 나라를 수월하게 통치하기 위한 수단의 일부라고 주장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건 별나지 않고서야 그 제도권 밖에서 버텨내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람들이나 가축은 누군가 정해놓은 울타리 안에서 평생을 안위하며 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숀 펜이 찾고자 하는 히말라야의 눈표범이나 , 세렝게티의 상위 포식자들은 그 본연의 야수성이나 야생 본능 때문에 구역이 정해지지 않은 지역을 넘나들며 살아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여기에서 무얼 하는가, 나는 전에도 살았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살 것 같다고 말하는 미정의 생각을, 나도 했었는데 그 생각을 무너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던가,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의 총탄에 서거하고 주야장천 TV에 나오는 장면들은 마치 부모를 잃고 길가에 앉아 통곡을 하는 것 같아 보이는 할머니들이었는데 그들을 보고 나서 잠자리에 든 채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그때는 온 세상이 망하는 줄 알았다.)

우리가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일으켜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출근하고 학교 가고, 일하고 공부하고 경쟁하고, 친구나 동료들과 저녁 먹고 술 마시고 하는 행위들이 결국은 하루라도 쉬는 날에 늦게 일어나고, 하고 싶은 거 하는, 해방을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함이 아닐까.

창희가 아버지에게 3억 투자해서 월 천만 원 순수익이 나는 편의점을 하자는 제안을 하자, 계속해서 밥만 꾸역꾸역 삼키던 아버지 제호가 눈길 한번 주지 않으며 말한다.

"네가 3억 모아서 해."

밥을 먹고 나서 창희가 친구 두환에게 말한다.

"아, 슬프다.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돈이 없을까."

대한민국 국민의 몇 %를 빼고는 누구나 할 법한 생각이다.

올 겨울이 오기 전까지 머리를 밀던가 아무나 사랑하겠다는 기정의 말에 태훈이 대꾸한다.

"머리 밀지 마세요. 제가 그 '아무나'할게요."

아침엔 춥고 낮에 더운, 다소 당황스러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말이 기다려지는 건, '나의 해방일지'와 '우리들의 블루스'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감우성 손예진의 '연애시대'나 이선균 아이유의 '나의 아저씨'가 기다려지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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