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장르라면 재즈, 롹, 블루스 등이 있지만, 나의 대학 시절 음악 장르는 디스코와 블루스 단 두 가지뿐이었다. 그때는 과 행사가 있으면 늘 가는 곳이 디스코 텍이었는데, 그곳에서의 음악이 그 두 종류였기 때문이다. 저학년 때 디스코텍에 가면 디스코 타임에는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춤을 춰야 했고, 남학생이 적은 과의 특성상 블루스 타임에는 선배들의 강요로 여학생들과 블루스를 춰야 했다. 춤을 제대로 배워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여학생과 한 손은 맞잡고 한 손은 여학생의 어깨나 허리에 댄 채, 리듬에 맞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후, 고학년이 되고 나서야 후배들이 블루스 타임에 매진할 때, 테이블에 앉아 여유 있게 담배를 물고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얼마 전, 시작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제목을 보고, 그때 나와 합을 맞췄던 수많은(?) 선후배와 동기들이 생각났다. 그때, 그들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지금은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 혹은 딸로 잘 지내고 있겠지.
'우리들의 블루스'는 노희경이라는 유명 작가의 영향인지, 한 드라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배우들이 동시에 출연을 한다. 작가의 전작인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도 김혜자, 고두심, 신구, 나문희, 김영옥, 윤여정, 주현을 동시에 볼 수 있었듯이 이병헌, 차승원, 이정은, 한지민, 신민아, 고두심, 김혜자 등이 출연한다.
2030 세대에는 인기가 없어 시청률이 저조한 편인데, 나는 감칠 맛나는 대사가 재밌기도 하고, 동경의 대상인 제주도의 풍광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한수와 은희 이야기인데, 은희 역을 맡은 이정은의 대사가 가슴에 와닿았다.
"돈 있는 나도 챙기고 돈 없는 한수도 챙겨야 친구지. 니들은 친구도 아니야."
학창 시절에는 공부와 싸움 실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지만, 나이가 들수록 돈과 권력이 인생의 꼭짓점이 되고 만다. 학창 시절, 소문난 찌질이었어도 건물 몇 채에 수십억 대 자산가라면 다들 부러워하거나 우러러보기 마련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본주의 사회니까.
전에는 나도 부자인 친구를 보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학교 다닐 때 내가 구박하거나 면박을 줬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돈 많은 친구가 나한테 적은 돈이라도 거저 줄 것도 아니니 평소처럼 대하면 되고 주눅 들 필요도 없다. 또, 돈 없는 친구가 자꾸 돈 좀 빌려 달라고 힘들게 하더라도 형편 되는 대로 못 받아도 될 만큼 주면 된다. 그 돈 없다고 죽는 건 아니니까.
'우리들의 블루스'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닥치고 본방을 사수하게 될 것 같다. 적어도 그 속에는 때로는 찌질한, 남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너와 나, 우리의 속내가 보여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