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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x Jul 04. 2022

내 사전에 손절이란 없다

나는 손절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살았다. 예전에는 절교로 불렸던 것 같은데 요즘은 관계의 단절을 손절이라고들 부른다. 사전을 찾아보니 손절의 뜻은 손해를 끊는다는 뜻인데, 현대사회에 걸맞은 표현이 아닌가 싶다. 한 푼의 손해도 안 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들어있는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살다가 어떻게 이익만 볼 수 있을까, 가끔 손해도 보고 사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무던하고 순한 성격인 나는 가끔씩 가까운 친구나 지인들에게 듣는 소리가 있다.

"너는 쟤를 왜 만나니?"라는 소리다.

내가 만나는 사람을 가까운 주변인들이 보고 난 후 내게 하는 소리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고 말하는 산악인이 있듯이 나도 그들이 거기 있기에 만날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듣고 그들을 다시 살펴보니 그들이 그런 말을 들을 만한 사유가 있었다. 그들 중엔 친구가 없도록 주변을 단절하거나, 사람이 접근하고 싶지 않은 언행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 가지 일이 겹쳐 힘든 시기가 있을 때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건강과 재산을 잃으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했던가. 나와 관계된 많은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들과의 즐거웠던 시간,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 서운하고 서운해했던 시간들. 많은 시간들을 되뇌고 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 마음에 부처가 있다'던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친구 사귀어봐야 소용없다는 말씀 늘 입에 달고 사셨다. 한참 친구들과 노는 게 즐거운 나이에 그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오면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 짜장면과 짬뽕을 시켜주시곤 했다. 집밥 이외엔 떡볶이와 중국음식 밖에 없던 시절, 그래서 아이들에게 우리 집은 인기 장소였다.

나도 아이를 낳고 나이를 먹으니 어머니의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어머니의 예전 말씀은 '내가 잘 돼야 친구들에게도 친구 노릇 할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되었다. 내가 매일 빌빌대고 돈이나 빌리러 다니고 사고나 치고 다니면 가까이할 친구가 어디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친구에게 상당히 불쾌한 말을 들었다. 술에 취해 집에 오면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너무 불편한 마음이 들어, 속된 말로 그 친구를 손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지 말고 차단을 할까 하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그 친구는 술자리 중간부터 만취해서 전혀 기억을 못 하는 것이었다. 술에 취했어도 실수한 건 실수한 거라고 처음의 손절 생각을 고수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기억 못 하고 어제의 일을 복기하며 묻는 그에게 차근차근 기억을 더듬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넘버 쓰리'에서 최민식은 세상에서 가장 싫은 말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쁜 죄를 지은 놈이 문제지 죄가 무슨 죄냐고 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없었던 일인 듯 그냥 덮어두고 가도 좋은 일이 있고 따끔하게 혼을 나야 하는 일도 있다. 그 영역을 인간이 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신이 결정한다고 해서 억울해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늘 남에게 실수하지 말아야지, 남이 싫어할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말아야지 하며 살아가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나만 그런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손절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게 손절당했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앞으로도 나는 손절하지 않을 것이며, 설사 내가 손절당하더라도 분노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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