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내 이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nx Jun 12. 2022

"애들은 가!"

약장수가 애들을 내쫓는 이유

실제로 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예전에 봤던 TV 드라마나 영화, 코미디 프로를 보면 저잣거리에서 약을 파는 약장수 행사에는 늘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군중심리 탓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약장수 특유의 입담과 너스레, 남다른 퍼포먼스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고 나서 정작 메인이벤트인 약 팔기에 돌입하기 전에 약장수가 반드시 내뱉는 말이 있었으니 그 말은 바로 "애들은 가!"였다.

여태까지 아무 소리도 안 하던 약장수가 행사의 하이라이트에 하는 말이 '애들은 가!'라니, 90분간의 혈투와 연장전 끝에 피비린내 나는 승부차기에 돌입하기 전, 관중들을 경기장 밖으로 내보내는 축구 경기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동안 '왜 애들은 가!'인가를 궁금해하던 차에 몇 년 전 술자리에서 내 궁금증을 얘기했더니 몇몇이 그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해줬다.

1. 애들은 인생 경험이 짧아서 순수하고 순진한 이유 돌출 행동이나 언행을 할 소지가 있어서 약장수가 준비한 행사에 다소 걸림돌이 될 것이다.

2. 어른들 중 애들을 데리고 행사를 지켜보는 어른들이 있을 텐데, 아이들의 집중력은 한계가 있어서 행사 막바지에 다다르면 그 인내심의 한계를 보일 것이고 그러면 칭얼대는 애들을 어른들이 어르고 달래느라 행사의 집중도를 떨어뜨릴 소지가 있기에 애들을 동반한 어른들을 돌려보내기 위한 방책이라는 것이다.


이십여 년 전, 아버지께서 편찮으신 어머니를 위해 전원주택을 지을 때, 아버지의 지인분이 메뚜기 더듬이 같은 도구를 들고 와서 수맥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누나의 조카가 일곱 살이나 됐을까, 그 녀석이 그 아저씨를 졸졸 쫓아다니더니 질문을 난사했다.

"아저씨, 그거(수맥 찾는 도구) 어디서 샀어요?"

"아저씨, 그거 문방구에서 얼마예요?"

아버지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모시던 그분은 난감한 표정으로 수맥을 찾아 걸어 다니다가 연속되는 아이의 질문에 한 마디를 던졌다.

"얘, 저리 가!"

매우 짧았지만 단호한 어투였다.


다시 술자리로 돌아가서, 그날의 결론은 아이들은 약장수의 매출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에야 아이들이 엄마 카드를 들고 다니며 카드를 벅벅 긁어대지만, 그 옛날의 아이들이 무슨 엄카가 있었을 것이며, 군것질할 돈도 없는데 약장수가 파는 다소 가격이 나가는 약 따위를 살 수 있었겠냐는 것이었다. 설사 전직 약장수에게 물어보더라도 선뜻 명확한 답을 내지 못할 질문을 던진 내가 머쓱하기도 했지만, 수년간의 궁금증이 다소나마 해소되는 술자리였다.

지금은 노인, 어린이, 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대우해 주는 사회로 변모한 지 오래라 함부로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이 됐지만, 가끔 술자리나 가족들 모임에서 좌중의 이목을 끄는 대사 한 마디로 써봐야겠다.

"애들은 가!"

매거진의 이전글 "으따, 딱부리 왔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