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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 이야기

코골이의 비애

by Jonx

코골이도 가족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릴 적 아버지는 코를 고셨는데, 나는 그저 나이 먹은 남자는 다 코를 고는 줄 알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코골이도 있고, 이를 가는 사람도 있으며 수면 무호흡증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부터 음주를 인생의 미덕으로 살아온 나는 비만과 코골이, 수면 무호흡, 말 그대로 트리플 크라운에 등극하게 되었다.

와이프가 무던한 덕에 코골이와 수면 무호흡증에 큰 불편함을 겪지 못하고 살았는데, 문제는 외부에서 잘 때였다.

코골이에도 급수가 있어서 약, 중, 강, 최강으로 분류되는데, 나의 경우는 최강에 속한다. 웬만한 코골이들은 가볍게 제압하는 수준.

단체 여행을 갈 경우 나는 미리 고지한다. 제가 코를 심하게 골아서 미리 텐트를 준비했으므로 나중에 밖에서 잘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요지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도 코를 고니 괜찮다, 뭘 불편하게 밖에서 텐트치고자냐, 이해하니 같이 자자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같이 잔 다음날 아침의 풍경은 전날 밤과 사뭇 다르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다음부터는 안 말릴 테니 꼭 밖에서 텐트 치고 자라, 이번 모임이 마지막이다라는 표정들이다.

그럴 경우, 참 난감하다. 그것 봐라, 내가 밖에서 잔다고 하지 않았냐, 괜찮다더니 이 분위기 어쩔 거냐고 묻을 수도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어색한 분위기는 오전 내내 이어진다.

해서 나는 여러 명이 같이 자야 하는 게스트하우스나 셰어하우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여행은 진작에 포기했다. 여기저기서 노래를 부르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예약제로 운영하는 국립공원 대피소를 이용해야 하는 여행은 애저녁에 꿈도 꾸지 않는다.

그렇지만, 문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다. 잠깐 이용하는 좌석버스나 일반 버스에서 살짝 졸 때도 물론이지만, 특히 장거리 이동시 KTX나 고속버스를 탈 경우, 혹시라도 코를 골까 봐 눈을 붙일 수 없다는 게 큰 애로사항이다.

한 번은 부산에서 KTX를 타고 상경하는데, 장례식장에서 술도 한잔 마신 터라 졸음이 쏟아져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그 잠깐사이 꿈을 꿨는데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있었고, 친구의 센터링을 받아 멋지게 헤딩하는 순간,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혔고 내 코 고는 소리에 잠이 깬 것이었다.

쪽팔리기도 해서 누가 본 사람이 없나 곁눈질로 두리번거리는데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어유, 저 코골이, 집에 가서 골아라 인간아, 저 사람 와이프가 불쌍하다 류의 소리가 환청으로 귓가를 맴돌았다.

나의 근본적인 문제는 잠깐만 자리에 앉아 등만 기대도 쉽게 잠이 든다는 것인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휴대폰도 들여다보고 큰 움직임 없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스트레칭을 하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여, 코 고는 사람을 욕하지 말자. 그들도 코를 골고 싶어 고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도 태어날 때부터 코골이는 아니었다. 애기 때는 쌔끈쌔끈 얌전히 잤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땅의 코골이들이여, 주눅 들지 말자.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그저 우리는 인두편도가 남들보다 좀 비대하고, 짧고 굵은 목을 가졌거나 큰 혀와 큰 목젖을 가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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