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한국 프로야구 명장면 순위를 보게 되었다. 평소에 야구에 관심이 많고 굵직한 명승부를 많이 본터라 예의주시하고 있다가 10위 안쪽에 들어섰을 때, 1위는 2002년 삼성 라이온즈가 이승엽의 동점 홈런,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이 나와 우승을 하게 되는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 삼성 라이온즈는 단 한 번도 우승을 못하고 있었고, 우승 청부사 전 해태 감독 김응용까지 모셔온 상황이었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은 생전에 본인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딱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게 바로 골프와 자식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 3개를 고르라고 했으면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이었으리라. 결국 이병철 회장은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을 보지 못하고 타계한다.
이때 상대편인 LG 트윈스의 감독은 명장 김응용 감독도 인정한 야신 김성근 감독. 페넌트 레이스는 물론 플레이오프에서까지 혹사당한 야생마 이상훈이 이승엽에게 동점 홈런을, 최원호가 마해영에게 끝내기 홈런을 바치고 한국시리즈에서 고배를 들고 만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MBC 청룡이었던 팀은 1990년에 LG 트윈스로 새롭게 시작하고 창단 첫 해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 감독은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한국 프로야구 최초이자 마지막 4할 타자였던 백인천. 그로부터 4년 후인 1994년 김재현, 서용빈, 유지현 신인 3인방이 돌풍을 일으키며 두 번째 우승을 거두고 명문 구단으로서 자리매김하나 싶었는데, 그게 벌써 30년이 되어간다.
어쨌거나 나의 예측은 틀렸고, 명장면 1위는 1984년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 아니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거둔 최동원의 차지였다. 페넌트레이스에서 27승 13패에 방어율 2점대를 기록했으며 그 해 기록한 223개의 탈삼진 기록은 37년이 지나서야 깨지는 대기록이었다. 더욱더 대단한 것은 한국시리즈에서 40이닝을 던지고 4승 1패를 거둔 것이었는데, 4게임이 완투경기였다. 그야말로 인간계가 아닌 외계인의 강림으로 세운 금자탑이었던 것이다.
그때의 감동을 추억하며, 고인이 된 최동원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우승을 거둔 마운드에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이 몰려들었고 거기서 뜻밖의 이름을 보게 된다.
서.말.구.
서말구는 1979년 멕시코 유니버시아드에서 100미터를 10초 34로 달려 한국 기록을 세운 사람이다. 이 기록은 2010년 김국영이 10초 31로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무려 31년 동안 한국의 100미터 공식 기록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롯데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고 당대 최고의 선수인 최동원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니.
찾아보니 서말구는 뛰어난 주력으로 롯데 자이언츠 선수 겸 코치 트레이너로 일했는데, 야구에서 대주자라는 것이 단순히 달리기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야구 전반적인 감각과 경험이 있어야하는터라 직접 경기에 나서지는 못하고 코치로 구단에 기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끔 채널을 돌리다 보면 의외로 뜻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고 즐거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고인이 되신 두 분께 애도를 표합니다.
*여담이지만, 삼성 라이온즈의 마해영이 끝내기 홈런을 치고 1루 베이스를 밟기 전 박흥식 1루 주루코치와 부둥켜안는데 그 전의 상황이 두 팔을 벌리고 빙그르 도는 장면이다. 내가 보기엔 쓰리피트라인 밖으로 보이는데 이는 룰에 어긋나지 않는 것일까. 상대편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심판이 판정이 내리지 않는 것이 야구의 기본룰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누군가 이의를 제기했다면 어떤 상황이었을까. 그냥 한 번 궁금해서 해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