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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x Apr 09. 2023

영화 '에어' 그리고 '에어 조던'

전설의 탄생 비화

1984년 미국 프로농구 NBA 신인 드래프트는 실로 별들의 향연이었다. 시카고 불스 왕조를 건설하고 챔피언 3회 연속 우승을 두 번이나 거두게 한 농구의 신 마이클 조던이 3순위로 뽑혔을 정도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아킴 올라주원, 코트의 악동 찰스 바클리, 천재 가드 존 스탁턴 등이 그 해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입성했다.

"나는 득점만 하면 됐다. 그 나머지는 피펜이 다 하니까"라고 황제적 겸손을 보여주던 마이클 조던은 스코티 피펜, 데니스 로드맨, 토니 쿠코치, 스티브 커(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감독) 등과 함께 90년대 8년 동안 파이널 챔피언쉽에서 6회 우승을 거머쥔다. 이는 90년대 후반 5년 동안 4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뉴욕 양키즈와 더불어 미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기록으로 뽑힌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영화 '에'는 나이키의 에어 조던 탄생 비화를 알려주는 영화다. 어찌 보면 미국의 자랑질이자 나이키의 잘난 척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그 아래에는 인간 본연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80년대초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나는 그저 말표 운동화와 하얀 실내화만 보다가 희한한 빨간 갈고리 모양이 박힌 신발을 보게 된다. 그게 나와 나이키의 첫 만남이었다. 어머니는 나이키를 사주지 않으셨고 나는 어머니에게 사 달란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사촌형님이 일본 전지훈련을 다녀오면서 사다 준 '아식스 타이거'를 받아 들고는 환호 작약하던 기억이 있다. 그때만 해도 아식스 타이거는 일본에서만 판매하고 국내에 진출하지 않던 브랜드였다.

어쨌거나, 1984년 당시 나이키가 조깅화 시장 점유율은 높은 상황이었는데, 농구화만큼은 압도적인 컨버스, 유럽의 전통 강호 아디다스에 이어 3위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나이키 멤버들과 조던, 그의 부모와 에이전트 이야기가 바로 영화 '에어'다.

조던과 의 가족들에게 공을 들이던 나이키사 임직원들은 결국 그들의 감동을 받아내고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바로 나이키 '에어 조던'의 시작이었다.

하얀색 이외의 신발 착용 시 NBA에서 벌금을 부과함에도 불구하고 조던을 위한 신발에 색을 입히고 벌금을 부담하기로 하고, 당시 업계에서는 존재도 하지 않았던 판매량 수익의 일부를 조던에게 주기로 한 파격적인 일을 성사시킨다. 이와 같은 맷 데이먼의 제안에 처음에 펄쩍 뛰며 반대하던 나이키사 사장 벤 에플렉은 갑자기 약에 승인을 하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나이키의 시작도 이랬지".


영화 '에어'에선 마이클 조던의 뒷모습만 보인다. 심지어 대사도 없다. 마이클 조던의 농구 장면을 보고 싶다면 마이클 조던 '라스트 댄스'를 보시라. 그래도 농구가 마려우면 요즘 핫한 '슬램 덩크'를 보시라. 그래도 부족하면 장항준 감독의 '리바운드'를 보시라.


*마이클 조던이 아버지를 불의의 사고로 잃고 NBA를 잠정 은퇴한 후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시기가 있었다. 이때, 야구를 무척 잘하기도 했지만 잘난 척도 잘하기로 소문한 배리 본즈가 마이클 조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이, 마이클. 네가 하던 농구 슛 성공률이 40%를 넘어야 잘한다고 한다지? 여기, 야구는 3할만 쳐도 칭찬받는 곳이야. (까불지 말고)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

배리 본즈 때문은 아니지만 결국, 마이클 조던은 복귀를 선택했고 또다시 3회 연속 우승이라는 불멸의 대기록을 작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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