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을 알게 된 건 '부당거래'를 보고 나서였다. 명대사가 난무하는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영화감독이 있다니'하고 감탄하기에 이른다. 그 후로 나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 '자꾸 나랑 라이벌 관계를 가지려고 하지 마' '내가 잘못했네. 경찰이 기분 나빠하는 걸 하면 안 되지.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등의 대사를 술자리에서 시전하고 내뱉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류감독의 후속작을 보고 살짝 실망하기에 이른다. 그 실망은 '베테랑'에서 최고조가 됐는데, 뭔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도포자락에 샌들 신은 느낌이랄까. 어쨌거나 내 개인적인 느낌은 그랬다.
하지만, 그의 신작이 나왔다기에 서둘러 예약을 하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김혜수와 류승완이라...그리고 70년대를 배경으로 어촌마을에서 일어나는 밀수이야기라는 것이 구미를 당겼고 장기하가 음악을 맡았다기에 궁금하기도 했다.
소문난 잔치상에 먹을 것 없다지만, 최근 들어 영화가 시작한 지 20분 동안 졸지 않고 끝까지 박진감 넘치는 영화를 본 건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김혜수는 물론이거니와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의 연기는 지루할 틈이 없었고 고민시라는 귀엽고 아리따운 배우의 발견은 흥미로운 사건이었다.과거 '트랜스포머'에 나온 메간 폭스를 보고 저런 배우를 발굴해 내는 그들의 시스템에 놀란 적이 있었는데 이제 우리나라 영화계도 일정 수준에 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밀수'의 압권은 해녀들과 건달들의 수중 액션씬인데, 바다가 나오면 망한다는 그 옛날의 '워터윌드'나 007의 수중 액션씬에 전혀 뒤지지 않는 고퀄리티의 장면이었다. 박수 짝짝짝.
버럭 짜증 찌질 연기의 달인으로 꼽히는 이선균 정우의 계보를 잇는 박정민은 '응답하라 1988'에서의 덕선 언니 보라의 찌질 남친 연기에 이어 다시 한번 비열 찌질연기를 선보이는데, 그 패션과 헤어스타일이 한몫을 한다.
그저 얼굴을 클로즈업했을 뿐인데 '아, 내가 영화관에 와있구나'를 알게 해 주는 조인성은 월남에서 돌아온 권필삼 상사역을 맛깔나게 연기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내 입에서 최헌의 앵두와 김트리오의 연안부두를 저절로 흥얼거리게 만든 음악감독 장기하의 음악도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