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내 이야기

르망부터 레이까지

내가 탔던 자동차 이야기

by Jonx

"차 바꿨다면서? 무슨 차야?"라는 질문에 남녀의 차이는 확연해진다.

남자들은 벤츠 S 클래스 W221 혹은 제네시스 GV 80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하지만, 여자들의 경우는 '외제차' 아니면 '국산차'로 나누어 말한다. 많은 남자들은 차 관리에 엄청 신경을 쓰는 편이다.(어릴 적에 아버지와 친구분들은 '마누라는 빌려줘도 차는 안 빌려준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곤 했다) 비싼 돈을 들여 스피커도 바꾸고 튜닝하고 광택 내고 세차에 열정을 바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여자들의 경우는 엔진오일을 언제 갈아야 하는 것인지조차 어려워하기도 한다.


나는 운전면허를 따자마자 꿈이 자동차를 갖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올백(모든 과목을 백점 맞는 것)을 받은 선물로 사주신 자전거처럼 그저 즐겁게 타고만 다니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차를 살 때 드는 비용은 빼더라도, 우선적으로 보험을 들어야 했고 주기적으로 정비를 해야 했으며, 세금을 내고 휘발유를 넣어줘야 했다.


첫 차가 생긴 후, 여러 차례 차를 바꿔 탔고 많은 경험도 했는데, 그간 나를 거쳐간 차를 더듬어 보고자 한다.


대우자동차 르망. 사진의 차보다는 깨끗했다.


첫 차는 대우자동차에서 만든 르망 GTI였다. 매형이 타던 차를 물려받았는데, 그런대로 차도 잘 나갔고 무엇보다도 에어컨이 빵빵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핸즈프리도 달고 휴대폰으로 전화도 하며 여기저기 많이 쏘다니기도 했다. 한 번은 이 차가 속도가 얼마까지 나오나 싶어 최대한 달려본 적이 있는데 무려 198KM까지 나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당시 현대자동차에서 아반떼가 새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새 차의 반짝거림이 너무도 부러웠다.(중고차 타는 자의 설움) 당시 아버지의 차는 대우자동차의 브로엄이었는데, 친구들이 '너네 아빠 차가 브로엄이라며? 부러움!'이라고 장난치기도 했다


Screenshot_2020-08-22-14-46-44-1.png 쌍용자동차 무쏘. 최고급 사양에 풀옵션이었다.


두 번째 차는 아버지가 타시던 쌍용자동차의 무쏘였다. 아버지는 최고급 사양에 풀옵션을 넣고 소음방지 쿠션, 고급 튜닝 핸들까지 장착해 놓으셨다. 결혼하던 해인 2000년에 아버지가 차를 바꾸시면서 주셨는데, 이 차를 타고 등장하면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눈에 받기도 했다. 이 당시에 고급차로는 각 그랜저나 구형 에쿠스 정도였는데, SUV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최고급 SUV 부류였다. 4륜 구동에 넘치는 힘, 넓은 적재공간이 장점이었다. 나는 결혼하고 2년 후에 첫 아이를 낳았는데, 그전까지 거의 1년에 3만 km를 넘는 거리를 운행하며 여행을 다녔다. 장거리를 운행했음에도 잔고장을 일으킨 적이 없었는데, 아버지는 벤츠 엔진에 무보링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Screenshot_2020-08-22-14-47-50-1.png 대우자동차 레조. 내 눈에는 돼지저금통처럼 보였다.


에어컨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을 핑계로 새 차를 타보고 싶다는 욕망에 눈을 돌리다가 대우자동차의 레조를 구입하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3,000cc의 최고급 무쏘를 타고 다니다가 2,000cc LPG 차량인 레조를 타고 다니기 힘들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더 좋은 차를 타기에는 돈이 부족했다.


아이들이 둘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까지 우리 가족의 여행을 책임진 레조였다. 무쏘보다는 힘도 부족하고 적재량도 부족하고, 부족한 것 투성이었지만 그저 새 차라는 이유로 아끼던 차였다. 레조 역시 1년에 3만 km를 넘는 주행거리를 자랑하며 혼신의 힘을 다했다.


Screenshot_2020-08-22-14-48-38-1.png 쌍용자동차 로디우스. 캠핑의 동반자.


후배를 통해 입문하게 된 캠핑. 무엇보다도 넓은 적재함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트럭을 사자니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기가 좀 그랬고, 무쏘 종류의 SUV는 타봤기 때문에 새로운 유형의 차가 타고 싶었다. 이때 눈에 들어온 차가 쌍용자동차의 로디우스. 11인승을 구매해 맨 뒷좌석은 탈거해 적재량을 늘리고 가족 캠핑을 다니기 시작했다. 11인승이기에 승합차로 분류되어 세금이 싸다는 게 장점이었지만, 보험료는 일반 차의 3배 가량이었다. 결국, 나가는 돈은 같아질 수밖에 없었다. 대신, 주말 고속도로에서 버스 전용 차선을 탈 수 있었는데,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어 수많은 차들이 정차해 있을 때 버스 전용 차선을 달리는 기분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을 알 수가 없다.


문제는 쌍용자동차의 서비스였는데, 수시로 꺼져버리는 후방 깜빡이 등은 서비스센터에서 구매해 연장을 빌려 직접 갈아야 했으며, 주행 중 혹은 정차 시 나타나는 RPM 급상승 현상은 더 이상 로디우스를 탈 수 없게 만들었다.(수차례 쌍용자동차 서비스센터에 가서 점검을 받았으나, 문제가 없다는 답. 정말로 답답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Screenshot_2020-08-22-14-49-58-1.png 기아자동차 모하비. 큰 덩치에 비해 가볍고 잘 나간다.


로디우스를 처분하면서 가장 갖고 싶었던 차가 모하비였다. 육중한 덩치, 3,000cc, 넓은 적재함, 온갖 편의 사양. 그를 선택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결과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도심이건 고속도로건 밟는 대로 치고 나가는 역동성, 전통 지프차를 연상시키는 각진 디자인, 번쩍 거리는 대형 휠, 모두가 마음에 들었다.


뒷좌석에 타는 사람들은 다소 딱딱한 느낌이라며 장거리 주행에 힘들어했지만, 운전하는 나는 그야말로 소파에 앉아 운전하는 기분이었다. 다만, 불만이라면 연비. 큰 덩치에 넘치는 힘이 있으니 연비가 좋지 않은 건 당연한 것이었지만, 조금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 됐거나, 도심에서건 장거리에서건, 여행을 다니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명차였다.(그러기에 많이 팔렸겠지)


Screenshot_2020-08-22-14-55-00-1.png 벤츠 S500. 5,600cc. 배기량이 깡패다.


여러 가지 연유로 인해 타게 된 벤츠 S 클래스의 S500. 차를 좀 아는 후배들은 차 사진만 보고도 W221이니 뭐가 어쨌느니 말하고는 했지만, 내 눈에는 그저 벤츠였다. 들어보지도 못한 5,600cc의 힘은 크루즈 컨트롤만으로도 기나긴 언덕길을 가뿐하게 달렸으며, 가파른 경사로의 구불길도 전혀 흔들림 없이 나아갔다. 정숙성은 덤. 이래서 벤츠를 타는가 싶었다. 수많은 장점이 있는 차였는데, 그중에 차 문을 슬쩍만 닫아도 압력에 의해서 스스로 닫히는 고스트 도어 시스템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좌우회전 시 허리춤을 잡아주는 시트 시스템도 좋았다.


오프로드를 제외한 온로드에서의 주행 성능은 이전에 타던 모하비에 비해 월등했다. 배기량이 깡패라고 했던가. 다만, 후배에게 차를 빌려줬다가 사고가 났는데, 다음 해에 보험료가 어마 무시하게 상승해 놀라기도 했다.


카약을 얹기 위해, 50만 원 상당의 벤츠 전용 루프랙을 설치하고 다녔는데, 특이한 차라 눈에 띄었는지 종종 전화가 오곤 했다. "형님, OO에서 식사하시나 봐요?"


그리고 운전을 해보면서 느끼는 점인데, 내 차 앞으로는 깜빡이를 켜고도 쉽사리 차선 변경을 해 진입하지 않으며, 옆 차들은 내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내 뒤쪽으로 차선 변경을 해서 들어온다. 이게 벤츠의 위엄인가.(사실 나도 그렇게 운전하긴 한다)


Screenshot_2020-08-22-14-55-53-1.png 기아자동차 레이. 경차의 경쾌함.


이효리가 닛산의 큐브를 탄다고 소문이 나더니, 곳곳에서 큐브의 바람이 불었다. 이때, 눈에 띄는 차가 기아자동차에서 출시한 레이. 와이프가 탈 차였는데, 경차인 데다가 차량 내 천정고도 높아 아이들이 서있을 수 있을 정도였고, 조수석 문은 90도까지 젖혀졌다. 차고가 170cm로 높아 운전 시 시야 확보도 좋았으며, 천정이 높아서 뒷자리에 앉아도 다른 경차에 비해 답답함이 적었다. 레이가 출시되기 전에 미리 예약을 신청해 놓았는데, 경차 가격이 무려 1,480만 원. 핸들 열선에 뒷좌석 시트 열선까지 있는 풀옵션이기는 했지만, 경차 가격이 이렇게 비싸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의 장점은 주차. 전면 주차, 일렬 주차, 모든 주차가 수월하다. 조수석 뒷문은 처음 여는 사람은 좀 힘들어하지만 슬라이딩 도어라 옆 차의 문 콕도 방지해 주고 짐을 싣고 내리기도 편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부족한 힘과 연비. 1,000cc임을 감안하더라도 도로에서 용기 있게 추월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하며, 범법 행위이기도 하지만, 보복 운전은 상상도 할 수 조차도 없다.(어찌 보면 장점) 그리고 안습은 연비. 차에 붙어있는 공인 연비는 17km이나 실제 도심 연비는 8km에 불과하다. 1,000cc 경차가 1,500만 원에다가 연비가 8km라면 과연 누가 살까?(내가 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생활에서 세컨드 카로서 보유하고 있는 장점은 레이를 외면하기에 아쉽다.




모든 차를 처분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차는 레이다. 아직은 차를 바꿀 때가 되지 않았지만, 와이프는 SUV나 적재함 있는 SUV를 갖고 싶다는데, 나는 SUV도 좋지만 일반 승용차, 세단이 좋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포츠카를 갖고 싶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천정 뚜껑이 열리는 컨퍼터블을 타고 싶다.(그저 꿈일 뿐이다)


처음 차를 탈 때는 이 차도 타보고 싶고, 저 차도 타보고 싶었다. 그리고 차는 새 차를 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이 차 저 차 다 타봤으니 이제는 정말 오래 탈 수 있는 차, 경제적이고 나의 생활에 맞는 차가 좋은 차라고 생각한다.(차에 대한 욕심은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차가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다.(나중엔 이 생각도 바뀔지도 모른다) 차는 그저 살아가는데 약간의 편의성을 주는 기계일 뿐이다.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다. 태어날 때부터 차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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