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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 이야기

인사를 잘하자

by Jonx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송강호의 아내 충숙이 말한다.

"부자들이 착하다고? 돈이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거야. 돈이 다리미거든. 다리미로 주름살을 쫙쫙 펴주잖아".


나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통해 인사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안녕히 주무셨어요", 식사가 준비되면 "진지 잡수세요"하고 나서는 아버지가 수저나 젓가락을 들기 전까지는 부동자세로 기다려야 했다. 아버지가 출근하면 "안녕히 다녀오세요" 퇴근하면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등교할 때면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등 하루 일과의 거의 모든 부분에 인사가 따라다녔다.

그리고, 엄마나 아빠와 함께 계시는 어른을 보면 무조건 인사를 했다. 부모님과 같이 있는 분이면 부모님과 아는 사이의 어른이기에 당연히 인사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어릴 적부터 커서까지 계속해서 인사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나보다 어리다고 해서 반말을 한 적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처제와 동서가 생겼는데 그들에게도 존댓말을 했다. 이를 본 와이프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왜 제부나 처제들한테 반말을 안 해? 어우 불편해".

친하지 않은 사이 아니고서는 반말을 하지 않는 나였기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인지라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가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어디에선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외국사람들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미소를 지으며 인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돌이켜보니,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외국인들은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하곤 했다. 그 이야기의 뒤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르는 주변인에게도 인사를 하는 문화가 바람직할 것이라는 마무리였다. 그래? 그렇다면 나부터 도전해 보자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선 집 주변부터 시작해 보자는 생각에 아파트 승강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잘 받아주는 사람, 어? 저 인간 뭔데 인사질이지?, 귀찮은 듯 반응을 보이는 사람, 그런데 내가 하던 행동을 멈추게 된 건 20대로 보이는 아가씨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라고 내가 인사를 하고 승강기에 타자 인사를 받기는커녕, 잔뜩 경계태세를 취하더니 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민망하기도 하고 뻘쭘하기도 하고해서 승강기 문이 열리자 잽싸게 내렸다. 집에 와서 와이프에게 얘기하니, "나 정도 되니까 당신하고 살아주는 거야. 그 아가씨가 얼마나 놀랐겠어"라는 것이 아닌가. 나름 어릴 적엔 누나들에게 귀여움 받고 자랐고, 학창 시절엔 만인의 연인으로 이름을 드높이던 시절이 있었던 내가 이런 지경에 빠질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하긴, 가끔 승강기엔 탄 갓난아이가 눈을 마주치면 내가 손도 흔들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와이프는 그때도 그랬다. "애 놀라. 경기 일으켜". 그때는 아기 엄마를 위한 농담이겠거니 했었다.

하여튼 그 사건 이후로, 나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하기를 멈추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사람 관찰이 취미인 내게 가끔 거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인사를 안 하는 사람들이다. 인사를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분간도 안 가고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인사를 안 하는 걸까. 서로 인사를 안 할 사이도 아니건만, 인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받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인사를 하면 같이 인사를 하는 것이 관례이자 관습이거늘 그걸 부정하는 자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학씨.

전 같으면 그 사람이 계도될 때까지 인사를 받건 말건 계속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 많이 달라졌다. 나도 인사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너만 인사 안 할 줄 아냐, 나도 안다류의 맞불 전략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쌩까면 나도 쌩까기로 했다. 그렇지만, 소심한 나는 잠자리에 누워 생각을 한다. 왜 인사를 안 할까, 집에 안 좋은 일이 있는 걸까, 아니면 인사를 하다가 안 좋은 일을 겪은 거 아닐까 하는 걱정도 해본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대선배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악수를 청하는 그분의 손을 두 손으로 따뜻하게 잡아드렸다. 아, 이 푸근함. 이런 게 인생사는 맛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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