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내 이야기

원곡 모음 CD 구매기

by Jonx

1990년대 중반쯤, 휴대폰 매장에 들렀다가 음악 CD를 구입한 적이 있다. 40대나 50대로 보이던 아저씨는 매우 친근한 얼굴로 매장에 들어서더니, 매장 안의 여러 사람을 보며 두리번거리다가 대뜸 내게로 다가왔다.

"음악 좋아하시죠?"라며 그가 운을 떼자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친구와 후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촉이 좋은 인간들)

그 상황이 겸연쩍기도 해서 나는 그의 말을 받아줬다.(천상 호구)

"그럼요, 음악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이내 표정이 밝아진 아저씨가 설을 풀기 시작했다.

요지는 좋은 음악 CD가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됐으니 나보고 사라는 것. 나는 음악 CD를 많이 갖고 있으며, 새로 살 의향이 없음을 피력했지만, 무기력한 변명에 불과했다. 아저씨의 지속적인 회유에 마음이 약해진 나는 CD를 구매하기로 했고 그가 추천한 CD 세트를 받아 들었다. 그 CD 세트에는 제목만 봐도 알 법한 유명 팝송들이 그득했다. 결제하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저씨, 근데 이거 원곡 맞죠?"

이에 아저씨는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아유, 당연하죠. 지금 때가 어느 땐데..."

나는 예전에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 카세트테이프를 라디오 데크에 넣고, DJ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녹음해서 듣곤 했던 기억이 있기에, CD 4장에 그득 담긴 좋은 팝송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기쁘게 결제를 했고 드디어 CD 세트를 내 수중에 넣게 되었다.

'나 혼자 차에서 운전할 때 틀어봐야지'라고 내심 다짐을 하며 소중히 가방 안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혼자 차에서 조용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자세를 가다듬고 잠시 후 흘러나올 명곡들의 향연을 들을 준비를 마친 후,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전주부터 뭔가 이상했다. 시골동네 성인나이트 엠프에서나 흘러나올 듯한 반주, 그리고 이어지는 본토 발음이 아닌 가사만 영어인 노래. 아, 이것은 언젠가 독산동 노보텔 1층 펍에서 듣던 동남아 밴드의 반주와 보컬의 노래와 흡사했다. 설마, CD 4장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다른 것도 틀어봤지만, 모두 한 밴드 한 보컬의 노래였다. '아뿔싸, 당했구나.' 너무도 분했지만, 이미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 아저씨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아저씨, 근데 이거 원곡 맞죠?"

"아유, 당연하죠.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아저씨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CD 4장에 담긴 곡들은 모두 유명한 팝송 원곡이었고 단지 동남아의 이름 모르는 어느 밴드가 연주하고 부르는 노래였을 뿐이다. 그렇게 정신승리를 하였으나, 더 이상 그 CD의 노래를 들을 수는 없었다.(옆집 삼식이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언제까지 참고 들을 수 있단말인가) 그리고 나의 사랑 라디오를 틀어 진정한 오리지널 팝송을 들으니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Video killed the radio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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