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과 선배에게 따귀를 맞았다. 그는 과 선배이자 학보사 선배였고 예비역이었다. 오해로 인해 그런 일이 벌어졌고 나중에 그 오해는 풀렸지만, 학창 시절 누구를 때리지도 않고 맞아보지도 않았던 내게 그 일은 다소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 사건이 있던 학보사 사무실에 나를 때린 그 선배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하나 또 있었는데, 그는 나를 때린 선배의 한 기수 위의 여자선배였다. 당시 그 여자선배는 나를 때린 선배를 나무라며 나를 다독였었다. 그게 내심 고마웠던 나는 그 후로 가끔 그 얘기를 후배들에게 자랑 아닌 자랑삼아했고, 폭력의 시대를 거부한 나와 그 후 세대들 덕에 폭력 없는 시기를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후, 그 여자선배 아들의 결혼식이었다. 선후배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다시 그때의 폭력사건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가장 충격적이었다는 그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여자선배에게 고마움의 표현을 했는데 그 선배는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인양 신기해하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네?"
그에 대한 내 반응이었다. '그걸 기억 못 한다고?' 그 선배의 선택적 기억 상실(?)은 내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얼마 전, 방영했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 자의 반 타의 반 퇴직을 선택한 김낙수 부장이 친형을 찾아가 그간 서운했던 이야기를 토로했다. 형의 반응은 기억이 안 난다는 것. 김 부장은 낙담한다.
"기억이 안 나? 아니 정말 기억이 안 나?"
결국 김 부장은 혼잣말을 뱉는다.
"그래, 나만 기억하는 거였구나, 나만."
그때, 그 여자선배가 기억이 안 난다고 했을 때 나의 심정이 김 부장의 그것과 같았다. 나만 기억하는 거였구나, 나만. 하지만, 김 부장은 다음날 형의 고백을 받는다. 바나나와 함께.
"그 바나나 내가 먹었다.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