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내 이야기

나는 결백하다고 말할 수 있다

by Jonx

1980년부터 흑백 TV가 사라지고 칼라 TV 시대가 열리자마자, 나름 얼리어답터인 아버지께서 앞문이 좌우로 촤르륵 열리는 대한전선 흑백 TV를 치워버리고 삼성전자 이코노미 칼라 TV를 사 오셨을 때만 해도 곧 우리 집에도 비디오를 보게 될 날이 금방 올 줄 알았다. 하지만, 비디오는 곧 음란물이라는 인식이 뼈에 박힌 어머니 때문인지, 비디오는 늘 친구네 가서 보는 신세였다.(음란물 포함)

그렇게 어찌어찌 세월이 흘렀고, 기억도 나지 않지만 우리 집에도 비디오를 볼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이미 동네에는 비디오 가게가 창궐하여 어디서나 비디오를 빌려 볼 수 있었는데, 인기 있는 비디오는 순서를 대기해서 봐야만 했다. 나름 영화광이었던 나는, 인기 신작 비디오보다는 발매된 지 좀 된 명작류의 비디오를 빌려보곤 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도 비디오는 음란물이라는 생각이 변치 않던 어머니 때문에 몰래 비디오를 빌려보곤 했는데, 뜻하지 않게 일이 생기고 말았다.

내가 집에 없는 사이에 비디오 가게에서 집으로 전화가 온 것이다.

"OOO 씨 댁이죠? 여기 XX비디오 가게인데요,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제목이 기억나지 않아서 국내 영화 제목 아무거나 따옴) 반납 안 하셨네요. 오늘 지나면 연체료 발생하니 빨리 반납해 주세요."

이 전화 한 통은 우리 어머니의 혈압과 혈당 지수를 현격히 높였다. 비디오=음란, 반납 기일 초과=연체료. 우리 어머니가 싫어하는 단어가 빼곡한 그 전화 한 통에 그날 귀가하자마자 나는 어머니에게 심한 문책을 당했다.

나는 그런 비디오를 빌린 적도 없고, 설사 다른 비디오를 빌렸더라도 연체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어머니는 비디오가게에서 실수를 할리 없다며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결국은 비디오가게에 전화를 해서 사실 확인을 한 결과, 다른 사람에게 할 전화를 나에게 잘못 건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나는 어머니에게 음란, 연체자로 낙인이 찍혀버린 후였다. 그 후,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음란 불법비디오는 호환 마마보다 더 나쁘다'는 공익광고가 나올 때마다, 나는 내 관자놀이를 통해 어머니의 비수 같은 눈길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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