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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x Sep 13. 2020

아이, 토냐

그녀에게도 할 말은 있다

영화 '아이, 토냐'

토냐 하딩은 미국 피겨스케이팅 선수 중 최초로 트리플 액셀에 성공한 선수다. 트리플 액셀은 매우 고난이도의 기술인데, 성공률이 낮고 부상의 위험까지 따르는터라 많은 선수들이 시도 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연아는 그런 이유로 트리플 액셀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대신 다른 기술을 연마해 완벽하게 구사했다고 한다. 한때, 피겨스케이팅계의 총아로 불리며 김연아의 라이벌이었던 아사다 마오는 트리플 액셀에 성공해 찬사를 받았다.


영화 '아이, 토냐'는 토냐 하딩의 이야기인데, 그녀를 말하자면 낸시 캐리건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토냐 하딩과 낸시 캐리건은 미국 스케이팅계의 쌍두마차였는데, 스토리 만들기를 좋아하는 미국은 가정 형편이 어렵고 딸에게 모질게 굴던 하딩의 엄마 등을 다루며 그녀를 악녀 캐릭터로 만들었고, 반면 캐리건은 선한 캐릭터로 이미지 메이킹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경기를 벌이게 되었는데, 하딩의 전 남편이 캐리건의 무릎을 가격하여 부상을 입히는 사건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여론은 '그렇면 그렇지 악녀 하딩이 어디 가겠어?' '우리 불쌍한 캐리건은 어째?'로 바람몰이를 하게 된다. 실제로 하딩은 이 사건에 전혀 연루되지 않았지만, 이미 전 미국민들은 하딩을 이라이자로, 캐리건을 캔디처럼 여기게 된다.


결국, 올림픽에 출전한 캐리건은 테러로 인한 부상을 입고도 은메달을 획득했지만, 하딩은 경기 도중 스케이트 끈이 풀리는 등 불운이 겹치며 최종 8위에 그치고 만다. 하딩은 스케이팅 협회로부터 제명 선수로서의 생명을 마감했으며, 그 후 격투기 선수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불운한 건 하딩만이 아니었다. 캐리건이 테러 사건을 당하고 나서 16년 후, 그녀의 아버지가 친오빠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유명 스케이트 선수 출신으로 잘 나가던 그녀의 인생에 두 번째 오점을 남기는 순간이었다.


하딩이 악녀 캐릭터가 되고 싶어 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녀가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태어나고 싶었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거기에 딸에게 혹독한 엄마를 갖고 싶어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그녀는 태어나서, 어쩌다 그런 가정에, 그런 엄마에, 그런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뿐이다. 그렇다면, 그녀를 악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여론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 버린 것이다.


캔디를 괴롭히는 이라이자, 콩쥐를 괴롭히는 팥쥐가 없었다면, 그녀들은 지금까지 오래도록 회자되며 빛나지 않았을 것이다. 양이 있으면 음이 있듯이, 누군가 빛나면 누군가는 그늘에서 햇빛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다. 어두운 시절을 겪어야 했던 토냐 하딩의 남은 인생이 꽃피는 봄날 같기를 빌어본다.


*토냐 하딩 역은 마고 로비가 맡아 열연했으며, 그녀는 영화 제작에까지 참여했다. 하딩 엄마 역을 맡은 앨리슨 재니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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