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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x Apr 25. 2021

'힐빌리의 노래'

JD와 나의 선택

영화 '힐빌리의 노래'의 원 제목은 'Hill billy elegy'다. 풀어쓰자면, '힐 빌리 출신 가족의 슬픈 이야기' 정도랄까. 이미자를 가리켜 '엘레지의 여왕'이라고 할 때의 그 Elegy가 여기서 나온다.


어느 누구의 가족이건 간에 슬프지 않은 가족사가 있을까. 사람 일은 모른다지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있듯이 누구에게나 가족 간의 아픈 기억은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잘났거나 돈이 많더라도 아픔 하나쯤은 있어야 예기치 않은 순간이나 자리에서 말 한마디 할 구석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연유로 기타노 타케시는 '가족이란 누가 보지 않을 때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싶은 것'이라고 말한 걸까. 사실 가족만큼 나의 치부를 아는 사람은 없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친구도 가족만큼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힐빌리의 노래'에 출연하는 글렌 클로즈는 아카데미상 후보로 7번이나 올랐으나 정작 수상은 하지 못했다. 이번에 '미나리'의 윤여정과 함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둘은 74세로 동갑이다.

글렌 클로즈의 딸로 나오는 오똑한 콧날의 대명사 에이미 애덤스는 뚱뚱한 마약 중독자로 분해 충실한 역할을 해낸다. '컨택트'의 그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사람이 태어나 자라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뒤돌아 보게끔 한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건강과 재산, 직장 중 하나를 잃었을 때 그간 자신이 살아온 삶을 뒤돌아본다는 말이 있지만, 빡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삶을 뒤돌아볼 만큼 여유가 있거나 덕망이 높은 사람 그리 많지 않다.


글렌 클로즈의 손자이자 에이미 애덤스의 아들인 JD 밴스는 약물 중독자인 어머니로 인해 좋은 인터뷰 기회를 놓칠 수 있고, 사랑하는 여인과도 갈등에 빠질 위기에 닥친다. 믿을 사람이라고는 할머니와 누나인 린제이뿐이지만, 그도 녹녹지 않다. 번민에 빠진 JD. 결국 그는 어머니에게 이 한 마디를 던지고 길을 나선다.

"제가 여기에 있는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지지는 않아요"


영화를 보고 나서, 나의 20대가 떠올랐다. 대학시절, 뇌출혈로 쓰러지신 어머니.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넘나들던 어머니는 몇 개월 후 준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대신해 혼수상태였던 어머니의 대소변과 목욕, 식사를 챙기는 것은 오로지 누나와 나의 몫이었다. 어떤 날은 대소변 기저귀를 10번 이상 가느라 끼니를 거른 적도 있었고, 갑자기 안 좋아진 상태로 인해 산소 호흡기를 꽂은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밤을 새운 날도 부지기수였다.


어느 날, 병원 앞 벤치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들을 했었다. 친구들은 학교를 다니며 시험과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때로는 연애에 바쁜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하루 24시간을 어머니 간병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고, 다른 친구들의 행동을 부러워하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몇 년 후, 어머니는 퇴원을 하셨지만 운신을 못하셨기에 집에서도 간병은 계속되었고, 나중에는 간병인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누나가 결혼을 하고나서 간병인이 쉬는 주말이면 간병과 집안일은 나의 몫이었는데,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에게 따로 불평하거나 핑계를 대지 않았다.


어머니는 투병생활 28년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는데, 나는 단 한 번도 어머니를 간병하며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없었다. 가끔, 갑작스레 병세가 악화되면 속이 상해 화가 난 적은 있지만, 편찮으신 어머니가 내 삶에 방해가 되었다거나, 어머니로 인해 나의 20대나 30대에 다른 친구들이 누렸을 호사를 누리지 못해 서운하다는 감정은 없었고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JD처럼 '여기에 있는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지지 않는다'가 아니라, '내가 여기에 있지 않으면, 상황이 더 안 좋아질지도 몰라'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어머니의 3주기를 맞아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말했다.

"엄마에게 더 잘해드리지 못해서 그게 서운하고 죄송스러워"

듣고 있던 누나가 말했다.

"너만큼 한 애가 어딨니"


투병 시절, 어머니가 내다보시던 창문 앞에 새 모이를 놓았더니 산속의 여러 가지 새들이 와서 모이를 쪼아 먹는 걸 보시며 어머니는 "나는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나면 새로 태어나 훨훨 날아다니고 싶어"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지금도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 어머니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아 나무 위를 올려다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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