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휴일의 이른 아침이었다. 약속 장소에 서둘러 가는 길에 갑자기 급 응가의 신호가 왔다. 건물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는데, 가는 곳마다 문이 잠겨 있었다. 이미 뱃속은 꾸르륵거리며 폭발 직전. 화장실이 깨끗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새 건물에 대한 미련을 접고, 낡고 허름한 건물의 화장실을 섭렵하다가 드디어 찾아낸 화장실. 그곳은 80년대 초반에 갔었던 시골 외삼촌 댁의 외양간 겸 창고에 있던 화장실보다 살짝 나아 보였다. 바닥은 물건을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그냥 포기하고 버려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뱃속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재우고 정신을 차려보니 휴지가 없었다. 이를 어쩌나. 우스갯소리로 하던, 말린 후 바지를 올리기엔 시간을 많이 걸릴 것 같았고, 신문지에 구멍을 내서 손가락으로 닦은 후 신문지로 손가락을 닦는 신공을 부리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휴지통에 있던 화장지 중 가장 깨끗해 보이는 휴지 몇 개를 골라 해결하는 것이었다.
얼마 후, 술자리에서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하자 후배 한 명이 말했다.
"저는 그런 경우 많았어요."
"어떻게 해결했는데?"
"형처럼 휴지통에 있는 휴지 중에 깨끗한 걸 골라서 써도 되고요, 깨끗한 게 없으면 양말이나 팬티를 이용하면 되죠."
후배는 별 걱정을 다 한다는 식으로 나의 질문에 답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였나,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아는 선배가 화장실 안에서 나긋하게 말했다.
"야, 휴지 좀 갖다 줘."
"휴지 없는데요."
"좀 구해서 가져오라고."
"휴지통에서 깨끗한 휴지 골라 쓰시던가 양말이나 팬티로 닦으세요."
"???"
그 후로 내 가방에는 늘 휴지와 물티슈가 존재한다. 세상에서 참을 수 없는 것이 사랑과 재채기라지만, 준비되지 않은 급 응가는 멀쩡한 사람도 사색이 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영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주인공은 열악한 교도소에 수감되는데, 교도소 운동장 가운데에 변기통을 두고 사람들이 다들 보는 가운데서 용변을 보게 하는 것에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 응가는 은밀하고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