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내 이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nx Oct 03. 2021

이효리와 오징어 가이상

지금은 폐지된 것으로 알고 있는 '한 끼 줍쇼'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야말로 대표적 민폐 프로젝트가 아닌가 싶게 느껴졌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그래도 나름 신선한데?'였다.


MBC의 간판 드라마였던 '전원일기'도 막을 내린 마당에, 마음씨 좋은 김회장님댁도 아니고 무작정 남의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겠다는 심보니, 이건 우주여행을 개인적으로 가는 시대에 걸맞지 않은 프로그램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의 사람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자신들을 공인이라고 생각하며 일반인보다 특권층임을 자부하는 일부 연예인들의 선민의식이 바로 이 프로그램의 시발점이자 발로라고하면 지나친 오버일까.


하지만, 초반에는 열심히 시청을 했는데 그 이유는 연예인들이 남의 집의 초인종을 누르면서 어색해하는 표정이나 몸짓 때문이 아니라, 집마다 사는 스타일 그리고 밥을 먹는 분위기나 반찬 등이 궁금해서였다. 어릴 적에야 친구네 집에 가서 친구나 친구 어머니가 끓여주는 라면이라도 얻어먹으면서 남들이 사는 집을 구경하곤 했는데 어느 정도 크고 나니 결혼한 친구의 집들이 아니면 남의 집을 구경할 방법이 없어졌다. 이제는 집들이도 안 하고, 밖에서 만나 식당 가서 밥 먹고 술 마시고 하니 더더욱 남의 집을 볼 기회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찌 됐거나 프로그램 시작 초반엔 그런 이유로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서, '효리네 민박'이 시작하기 전인지 지나서인지 이효리가 출연한 적이 있었다. 동반 출연한 게스트는 칩의 여왕 SES의 슈였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대놓고 독설 작렬이 주특기인 이효리가 출연해서 잔뜩 기대를 하고 봤는데, 역시 그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강호동이 지나가는 어린이에게 특유의 설침으로 "학생, 집에 가는 거예요? 학교 재밌었어요?" 하며 들이대는데 이효리가 관심반 무관심반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강호동이 "학생은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라고 하자 참고 있던 이효리가 폭발했다.

"오빠는 뭐 그런 걸 물어봐! 얘 그냥 아무거나 돼. 아무거나 돼도 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 이 통쾌함. 초등학교 소풍 때 김밥을 허겁지겁 먹다가 목이 막혀 갑갑해할 때 들이키던 사이다의 맛. 그런 느낌이었다. 역시 이효리구나. 강호동 앞에서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강자. 무조건 같은 편 해야 하는 스타일.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는데, 우리네 인생도 게임의 축소판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때로는 이를 악물고 이겨야 할 때도 있고, 다 알면서도 져줘야 할 때도 있는 인생 게임. 어떤 때는 나나 우리 편이 다소 불리해지더라도 깍두기를 품어줘야 할 상황도 벌어지고, 상대편의 깍두기에게는 오징어 가이상에서 암행어사가 되도록 눈감아 주는 배려가 우리네 인생 게임이 아닐런지.

매거진의 이전글 급 응가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