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는 Deserter Pursuit의 약자로 군대 탈영병을 체포하는 헌병을 뜻한다. 병원에 가면 환자 투성이고 법정에 가면 전부 억울한 사람만 있듯이, 우리는 잘 모르고 지내지만 군대 내 탈영병의 숫자는 의외로 많다고 한다.(우리나라 군인의 수가 60만 명인데 한 달 탈영병 숫자는 60명 정도)
넷플릭스 드라마 D.P는김보통 작가의 웹툰 'D.P 개의 날'이 원작이다. 작가 자신이 군 이탈병 체포조였던 것을 바탕으로 그렸다고 하는데, 극 중 작가의 본명으로 등장하는 인물도 있다.
드라마의 도입부는 암울하게 그려진다. 아니, 드라마 전체 대부분이 그늘져 있다. 내 아내처럼 억울하거나 어두운 스토리를 좋아하지 않고 채널을 돌리거나 외면하는 사람들에겐 다소 불편한 이야기다. 원작의 제목이 '사람의 날'이 아닌 '개의 날'인 이유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면 채널을 고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인간,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주인공인 정해인은 늘 우울하다. 폭력을 일삼는 아빠, 맞고 사는 엄마, 이런저런 게 다 불만인 동생. 정해인은 아빠에게 맞지 않기 위해 권투를 배웠다. 권투는 때리는 운동이 아니라 덜 맞는 게 기본인 운동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갖게 되는 병역의 의무. 정해인도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자처럼 그 의무를 피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에 군에 입대를 하게 된다.
처음 겪는 낯선 세상. 낯선 사람들, 낯선 조직, 낯선 문화. 모든 게 낯설어 그냥 적응하도록 놔두기만 해도 힘든 곳에서 온갖 불합리한 일들이 폭력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진다. 그 부조리에 항거할 수도 없다. 권리는 없이 의무만 갖는 병영 생활엔 복종과 순종만이 미덕이니까.
호랑이 열정 호열 상병이 봉디 조석봉 일병에게 말한다.
"우리가 바꾸면 되잖아."
그러자 조일병이 대꾸한다.
"수통에 1954라고 쓰여있는 거 보셨습니까?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존의 것이 바뀌는 것을 싫어한다. 변화를 싫어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뭐든 바뀌면 일단 피곤하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이부자리도 안 개고 기껏해야 양치질이나 겨우 하는 사람에게 아침 일찍 일어나게 하고 일어나자마자 이부자리부터 개게 하고 전신 샤워를 해야 밥을 준다고 하면 좋아할 리가 만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옛부터 뭔가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아왔다. 실제 그 변화가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도 말이다.
정해인이 입대 전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꼬마 아이에게 잔돈 5백 원을 거슬러줬는데 그 엄마가 자기 아이의 잘못은 모르고 정해인에게 아이라고 무시해서 잔돈을 안 줬냐고 핀잔을 주자 해인이 가던 길을 다시 돌아서서 벨을 누르고 말한다.
"저 거짓말 안 했거든요."
할 말은 해야 하는 사회, 옳지 않은 것은 바로 잡아야 하는 사회가 바른 사회이지만, 적어도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과거의 군대는 그와는 정 반대의 사회였다. 선임이 검은 것도 흰색이라면 흰색인 사회, 모두가 바보면 정상인 내가 오히려 바보인 사회, 뭐 그런 거랄까.
부대 내 큰 사건을 치르고 나서 상급 간부들이 다 바뀐 점호 시각. 점호가 끝나고 부대원들이 가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서 가는 정해인. 그의 앞날에 '개의 날'이 아닌 '사람과 인간의 날'이 펼쳐지기를 기대해보는 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