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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x Nov 21. 2021

아빠 혼자 어린아이들과 극장가기

그리고 해피일 세트

나는 2000년에 결혼해서 2002년에 첫 아이를, 2004년에 둘째 아이를 낳았다. 그것도 아들 둘만.(아, 낳기는 와이프가 낳았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 나름대로 집안 일도 하고 육아도 돕는다고는 했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는 와이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와이프에게 자유시간을 주고자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때로는 대학 모임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고, 1박을 해야 하는 동아리 모임에 데려가기도 했다. 그리고 혼자 아이들 캠핑을 기도 했다. 그런 행동이 와이프에게 어느 정도 힐링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기껏해야 3살 5살이던 시절이었다. 매드 맥스 시리즈로 유명한 감독이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만 데리고 극장에 가기로 했다. 게다가 영화의 캐릭터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펭귄이 아니던가. 그 영화는 바로 '해피 피트'.

나는 아침부터 상당히 들떠있었다. 와이프에게 선사하는 작은 선물인 자유의 시간을 주었고,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의 펭귄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마음은 저 높은 하늘을 달리고 있었다. 그 희망이 커다란 절망과 좌절로 바뀔 거라는 사실 모른 체 말이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영화관 1층에 자리한 맥도날드에 가서 애들이 원하는 장난감을 받을 수 있는 해피밀 세트를 사주었다. 아이들은 해피밀 세트보다는 장난감에 더 많은 관심을 갖으며 매장에 전시된 장난감 모두를 갖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는 처음 시집간 며느리처럼 안 보이고 안 들리는 사람 시늉을 했다. 아이들이 원한다고 해서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임을 단호하게 알려주는 방법을 와이프를 통해 본 바는 있었지만, 그저 나는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내 최선이었다.

겨우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드디어 입장한 영화관. 유명세 덕인지 좌석은 만원이었다. 어린아이들을 위해 의자에 놓을 수 있는 쿠션을 각 하나씩 받치니 아이들은 불편함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최적의 상태가 되었다. 나는 속으로 내게 속삭였다. '이면 나도 훌륭한 남편이자 아빠야.'

하지만, 방금 전의 속삭임은 채 20분도 가지 못했다.

작은 녀석이 뒤척이기 시작했다. 온몸은 베베 꼬이고 엉덩이는 들썩거렸다. 그 유명한 감독의 영화는 해외 유명 배우들의 더빙으로 만들어졌는데, 자막을 읽을 수 없던 아이들은 당최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애당초 한국말 더빙을 두에 두지 않았던 나의 과오였다. 칭얼거리기 시작한 작은 녀석은 울기 직전의 모습으로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나는 작은 아이에 비해 조숙하고 차분한 큰 아이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동생 데리고 잠깐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조금 지루해 보이긴 했지만 스크린을 바라보며 큰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아이를 데리고 극장 밖으로 나오자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개를 치고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래, 컴컴한 곳에 앉아있기가 답답했던 거구나'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고 있는데 슬슬 극장 안에 혼자 있을 큰 아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자, 이제 들어가자." 듣는 둥 마는 둥 작은 녀석은 나를 피해 빠른 뜀박질로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마음은 초조해졌다. 극장에서 일하는 알바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초등학교 대표 육상선수 출신인 아빠를 닮아서인지 녀석은 제법 날쌨다. 알바생과 내가 토끼몰이를 하듯이 구석으로 겨우 몰아 잡을 수 있었다.

"안에 형이 혼자 있잖아. 형 데리고 나와서 맛있는 거 먹고 집에 가자." 녀석은 겨우 진정을 했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조심스레 극장 문을 여는 순간, 난 숨이 멎었다. 극장 문 앞에서 큰 아이가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맙게도 큰 아이 옆에서 달래주고 있던 한 아주머니 "애가 놀랐나 봐요. 자리에 앉아 큰 소리로 울길래 데리고 내려와서 달래고 있었어요."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며 극장 문을 나서는데 아이들 자리에 놓아두었던 방석 생각이 났다. 창피하기도 하고 다시 극장 안으로 들어갈 용기 생기지 않아 미안하지만 알바생들이 잘 처리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돌아서서 큰 아이를 바라보는데 아이의 울음소리는 더 커져있었다.

"왜 그래? 이제 나갈 거야. 안심해."

그러자 아이는 극장 문을 가리키며 울먹였다.

"해피밀 장난감 놓고 왔어요.(엉엉)"


그날, 나는 아이들에게 맥도날드에서 팔던 해피밀 세트를 다 사주고야 말았다. 맥도날드의 해피밀 세트를 만든 사람에게는 성공한 마케팅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저주의 장난감으로 기억될 것이다.

남해 보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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