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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x Feb 23. 2022

나는 친구를 욕하지 않는다

다만...

내게는 친구가 있다. 친구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찌 됐거나 내게는 몇 안 되는 친구가 있다.

나는 친구들과 만나면 농담하거나 재미있으면 그만인 스타일이라 늘 친구들과 웃고 즐긴다. 진지충인 친구가 하나 있지만, 내게는 30분 이내에 그 진지함을 걷어내는 고급 기술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도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의 뒷담화를 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그를 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남주혁과 김태리가 나오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김태리가 고등학교 펜싱부 선수로 나오는데, 책 대여점에서 빌려간 만화책이 찢어지자 본인이 그려서 붙여놓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책 대여점 알바생인 남주혁이 김태리가 직접 그려 붙인 그림을 보고 박장대소를 하는데, '나는 왜 안돼'라는 대사를 '나는 외 않되'라고 써놓은 것이다.


친구 1.

우리가 스물한 살 때던가. 술이 이기나 우리가 이기나 부어라 마셔대고, '몸에 나쁜 건 피워 없애야 돼'라며 줄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다. 인생의 고뇌를 되뇌며 마셔봐야 다음날 남는 건 숙취뿐. 아침으로 라면이나 먹고 헤어지자고 하나둘 움직이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이윤수의 '먼지가 되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친구 2가 나를 불렀다. 어제 신세한탄을 하던 친구 1이 책상 위 A4지 위에 써놓은 선명한 글씨. "사는 개 먼지'

친구 2가 라면을 끓이고 있는 친구 1의 뒤통수에 대고 한 마디 했다. "저 비어엉신~ 사는 개 먼지다~"


얼마 후, 방배동 카페 골목에서 친구 3 소개팅 시켜준 자리. '사는 개 먼지' 친구 1이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알려준 장소는 'NOW'. 간판에 그렇게 영어 알파벳으로만 쓰여 있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걸러온 전화.

"야~ X팔, 나오가 어디야?"

"나오가 아니라 나우."

"그래 병신아, 나오, 나도 알아 나오."

"나오가 아니고 나우라고. '지금'할 때의 나우."

"이 빙신아, 그럼 지금이지 어제냐?"

내가 가게 앞 1층으로 내려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1층 가게 앞에서는 친구 1이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야이, 빙신아, 너는 그렇게 설명을 못하냐? 도대체 어디야?"

친구 1은 오히려 내게 화를 냈다. 내가 조용히 가리킨 곳엔 'NOW'라고 쓰여진 커다란 네온사인 간판이 있었다.

친구 1은 한 마디를 뱉은 뒤, 피던 담배를 부벼끄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아, 저 나."


친구 4가 코로나 확진을 받고 자가격리 제되던 날. 단톡방에 친구 1이 톡을 날렸다.

"야, 저 놈(친구 4), 자가격리 구류생활 일주일 더 하라고 해. 그거 끝나면 두부멕이고 소주 한 잔 하자."

내가 바로 대꾸했다.

"그래, 저 놈(친구 4) 한 주 더 위리안치."

순간, 정적.

친구가 5가 말다.

"또, 쟤(친구 1) 욕하는군."

또 한 번의 정적. 이번엔 당사자인 친구 1이 말한다.

"어떤 X끼가 내 욕하는데~"


친구 4의 위리안치가 끝나면, 친구 1과 2, 3과 5까지 모두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그때 친구 1을 위한 멘트를 준비해 뒀다.

"야,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낙호아라."

그날의 술자리는 깊고 깊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친구의 뒤에서 욕하지 않는다. 다만, 상황을 설명할 뿐이다.

카페 '아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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