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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x May 11. 2022

속초...선배들과의 여행기

고등학교 선배들과 속초 여행을 떠나게 된 건 전혀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선배들과 당구를 치고 술을 거나하게 먹은 다음날 단톡방에 "속초는 월요일에 출발하는 거지?"라는 한 선배의 말에 문득 술자리에서 엉겁결에 대충 대답했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 속초에 가자고. 콜?"

"저는 못 갑니다."

"어쭈, 많이 컸다. 너는 무조건 가는 거야."

몇 번의 독촉에 술도 마셨겠다, 객기로 그만 "알았어요. 가죠 뭐."라고 대답을 해버린 게 실수였다. 가족들과도 자주 가지 못하는 여행을 고등학교 선배들과, 그것도 멤버의 막내로 가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다니. 취중진담이라지만, 이것은 취중에 최고의 악수를 둔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막내라는 이유로 운전, 온갖 잔심부름, 거기에 선배들의 심기 경호까지 온전히 내 몫이 될 거라는 불안한 예측 때문이었다.

한 선배의 지인이 대포항 근처에 세컨드 하우스가 있어서 그곳을 숙소로 쓰기로 하고 산본에서 모여서 속초로 향했다. 출발할 때의 마음은 무거웠지만, 막상 떠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미 버린 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한참을 달려 내가 추천한 곳인 인제의 막국수집에 들렀다. 보쌈과 감자전, 막국수를 시켜서 먹었는데, 보쌈과 감자전은 여전히 맛있었고 다소 밍밍한 맛의 막국수도 전과 같았다. 인제에 오면 가끔 들르는 곳인데 이번 방문이 다섯 번째는 되는 것 같다.

선배들 모두 보쌈과 감자전의 맛을 이야기하며 칭찬하는데, 한 선배가 말했다.

"보쌈은 괜찮은데, 막국수는 닝기리야."

사전에 막국수 맛은 별로라도 얘기한 터인데, 그런 말을 들으니 살짝 빈정이 상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음식 추천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다른 선배들의 내 역성을 들었다.

"거 형은 왜 그래요? 막내가 신경 써서 추천한 곳인데."

"맛있기만 하고만, 무슨 그런 말씀을."

선배들의 그런 반응이 아주 고맙기도 했지만, 더 잘하라는 채찍질 소리로 들렸다. 우리 선후배들 간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니까.

막국수집이 인제에서도 남쪽이라 미시령터널을 통과하지 않고 양양 간 고속도로를 타고 속초를 통해 대포항 숙소에 도착했다. 수도권에 사는 분의 세컨드 하우스답게 숙소는 주택가 한 켠에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방 두 개에 널찍한 거실, 욕실과 주방이 갖춰진 아담한 주택이었다. 앞마당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세트로 만들어진 데크가 있었고 자그마한 마당도 있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2박 3일을 보내기에는 무리가 없는 곳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장사항 포구 횟집의 회는 양도 많고 맛도 있었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속초해수욕장, 피 보기 당구게임을 쳤던 속초의 어느 당구장도 그립다. 이마트에서 장을 봐서 먹었던 고기, 연어도 맛있었고, 금강산 화암사는 나중에라도 가족들과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사찰이다. 오는 길에 내 추천으로 들른 양지말 화로구이의 고추장 삼겹은 선배들 모두 만족해했다. 심지어 인제 막국수 맛을 폄하했던 선배마저 나중에 가족들과 같이 오겠다고 했다.

이번 여행을 처음 제안한 선배는 얼마 전 퇴직한 선배인데, 퇴직 후 얼마 되지 않아 루게릭병을 진단받았다. 말로만 듣던 병을 주변 사람이 걸리고 같이 다니다 보니 루게릭이란 병의 심각성에 대해 다신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 아버지도 갑작스러운 혈액암 진단을 받고 3년 만에 돌아가셨더랬다. 선배가 부디 쾌차하시길 빌어본다.

자리는 어떤 술인지 어떤 안주인지보다는 같이 먹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고, 마찬가지로 여행도 여행지나 먹거리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갔느냐가 핵심인 것 같다. 2박 3일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몇십 년을 같이 지낸 식구가 아닌 고등학교 선후배 간의 시간은 다소 어색하지만 낯설지 않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그렇지만 막내로서의 고충이 녹록지만은 않다.)

"막내야, 우리 제주도는 언제 갈까?"

조만간 또 한 번 연락이 올 것 같은 예감이다.

장사항
백두산 횟집. 돌돔 우럭 광어
대포항. 덩그러니 뻘쭘하게 세워진 라마다.
속초해수욕장
저 멀리 보이는 롯데리조트.
수바위
화암사
대웅전
속초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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