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과 커피

서막: 변기 위 용호상박

by 닭갈비

사대문 안의 술집 하나를 다니던 때의 일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날이면 트인 주방이 보이는 그 집 바에 앉아 술 한 병에 안주 하나를 시켜 먹었다. 마음에도 곽란이 나는 수가 있다. 그럴 때는 뒤집어졌던 마음이 간(肝)과 함께 지쳐 까부라진 뒤에야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다.

그 집엔 혼자 드나드는 손님이 몇 있었다. 사장님을 다리 삼아 우린 종종 어울렸다. 합석해서 같이 마시기도 했다. 지금이야 오만 군데에 ‘혼-’을 가져다 붙여 진짜 외로운 늑대인지, 외로운 척하는 늑대인지, 아니면 늑대인 척을 하는 강아지인지 알 길이 없는 혼족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지만, 그때만 해도 어디 혼자 앉아 있으면 ‘너 친구 없구나?’ 음성지원이 되는 시선으로 힐끔거리는 사람들이 꽤 됐다.

혼술이 대세이든지 말든지, 혼밥이 유행하든지 말든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의 탈을 뒤집어쓴 외로운 늑대라는 철학 아래 식당에서, 술집에서, 영화관에서 조용히 홀로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니 어디 들어갔다가 불편한 시선을 온몸으로 들이받으며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애정 어린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 눈길에는 내가 너의 우군임을 알아달라는, ‘함께’가 지배하는 세상을 우리 언젠가 뒤엎자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담겨 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S라는 사람을 소개해 줬다. 그이가 자기한테 처음 요리를 가르쳐 줬다고 했다. S는 시내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일한다고 했다. 바에 앉아 둘이서, 때로는 사장님까지 셋이서 수다를 떨었다. 대화의 주제가 어쩌다 거기까지 흘러갔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직접 말아 왔다는 환상적인 부리또를 나눠 먹으며 기가 막힌 살사 소스를 맛봤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음식 이야기를 했고, 음식 이야기를 했으니 소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을 것이다.

문제는 이야기 끝에 갑자기 S의 입에서 변,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을 맛본 뒤 우리가 필연적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것,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왜 그렇잖아요. 귤도 많이 먹으면 똥이 귤색이 되니까요. 귤이 똥인지, 똥이 귤인지……”

나는 한동안 눈을 똥, 그랗게 뜨고 S를 쳐다봤다. 흩어진 귤의 과육들이 소용돌이치며 시커먼 구멍으로 빨려 내려가는 장면이 떠올라서는 아니었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여러 가지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급속히 친해졌나? 혹시 이이도 초면에 이런 이야기를 꺼낼 정도로 드문 이야기꾼인가?


취향도 때로는 권력이다. 그러므로 소수만이 즐기는 취향을 말할 때 우리는 그걸 밝히길 꺼리고, 그것이 하위문화일 때는 더더욱 움츠러든다. 생각해 보라. ‘싱글 몰트는 라프로익 정도는 돼야죠. 와일드하잖아요. 아이오딘 같은 드라이한 피니시가 미간을 찌르면 아, 이런 맛에 사는구나 한다니까요. 하하하하하. 아일라 가보셨어요?’라는 말을 풀어 누군가에게 위스키 좀 아는 것 같은 경외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똥이 귤색이 된다느니 귤이 똥색이 된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다가는 소화에 대한 박식함을 인정받기는커녕 대다수에게 경멸의 대상이 될 뿐이다.

엉킨 생각들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이는 지금 내 취향을 떠본 것인가, 아니면 소수 취향을 걸러낼 덫을 놓은 것인가. 밀도 있게 고민했고 곧 결론이 났다. 까짓거 귤과 똥에 장단 좀 맞춰주지 뭐. 침을 꼴깍 삼키는 동안 무슨 이야기를 꺼내서 어떤 식으로 호응해야 가장 이상적인 효과가 날지 생각했다. 수많은 호응의 역사는 이런 경우 주제는 맞춰주되, 살짝 변주하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맞아요.”

일단 동의를 한 뒤,

“커피도 그래요. 전에 드립커피를 하루에 세 잔씩 마시던 기간이 있었네요.”

정말 그랬다. 한 번 커피를 내리면 머그컵이 가득 찼고, 그렇게 하루에 석 잔, 1리터 가까운 커피를 마시던 그 한 달 동안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나면

“어김없이 변기에 앉게 되는데 일을 보면 알싸한 커피향이 올라왔어요. 일과 중에 커피를 갈아 물을 부어서 잔에 따르면 변기 위에서나 맡던 구수한 냄……”


귤을 커피로, 시각을 후각으로 변주한 내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사장님이 그 술집을 접고 다른 도시로 가기 전까지 이후로도 몇 번 나는 S와 합석했고, 나중엔 아주 그이가 일한다는 식당으로 찾아가서 살사 소스보다 갑절은 기가 막힌 나초를 씹기도 했다.

지금도 추운 겨울에 주문한 귤 상자에서 아침마다 상처 난 귤을 열댓 개씩 골라내서 썩히지 말자는 의무감으로 종일 그걸 먹어치우고 변기에 앉으면 S가 생각난다. 그이도 커피를 많이 마신 날에 내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