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와 커피

클로로겐산은 저주인가 축복인가

by 닭갈비

커피와 똥은 색깔만 닮은 것이 아니다. 검색창에 ‘미국화학학회(ACS), 커피’라고 치면 커피에 들어있는 클로로겐산이라는 성분에 대한 기사가 줄줄이 뜬다. 이 성분은 배변 활동을 돕는다고 한다. 그 녀석이 양팔을 걷어붙이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돕는지, 마신 커피가 대장에 영향을 주는 데는 4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도 한다. 물론 모든 이가 이런 축복을 받은 건 아니다. 클로로겐산에 반응하는 경우는 10명 중 3명 꼴. 나머지 7명에 속한다고 우울해하지는 말자. 그런 당신을 위해 준비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이번엔 사대문 술집에 다니던 시절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간, 내가 서울과 대전을 왕복하며 일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1년 반 동안 주말이면 서울에 왔다가 월요일 새벽차를 타고 다시 대전으로 향했는데, 그 주엔 마침 대전에 볼 일이 있던 선배 M과 동행을 하게 됐다. 표를 끊어 버스에 오르기 직전, 다정한 선배는 나를 데리고 편의점에 들어갔고, 오, 자비로운 선배여, 나는 즐겨 먹던 컵커피를 집었다.

월요일 새벽 45인승 무정차 일반 버스는 그날도 만원이었다. 나와 나란히 자리를 잡은 선배는 새벽차를 타느라 설친 잠을 보충했고, 나는 컵커피에 빨대를 꽂아 놓고 달콤한 커피를 한 모금씩 아껴 마셨다. 아마 그날도 엄마는 다시 며칠 동안 타지에 있을 자식에게 아침을 양껏 먹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도 컵커피에 들어간 클로로겐산은 내 위장의 배변 활동을 도왔을 것이다.


클로로겐산 화학식. 그림 우측 하단에 소매를 걷어붙인 양팔이 보인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hlorogenic_acid)


평소와 달랐다면 커피를 아껴 마신 탓에 조금씩 흡수됐을 클로로겐산이 양껏 먹은 음식을 내려 보내는 데 4분이 훨씬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 것. 미국화학학회에서 커피와 배변의 관계에 대해 언급했다는 기사가 나오기 한참 전이어서 나는 내 뱃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희미하게 알아차렸고, 또렷하게 알 게 되었고, 점점 더 정확하게 알 게 되었고, 결국 옆에서 자던 선배를 깨워서 내가 아는 것을 말하는 지경이 되었다.

“형. 나 화장실 가야 될 거 같아.”


스무 살을 훌쩍 넘긴 성인이 곤히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서 할 소리는 아니었다. 잠에 절어있던 선배도 그렇게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상황의 묵직함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득도를 버무린 해탈에 이르러 만인이 찬미하는 성인(聖人)이라 해도 고속도로 복판에 있는 45인승 무정차 만원 버스를 배가 아프다며 휴게소에 세워달라고 당당하게 말하기는 불가능했을 테니까. 선배를 깨운 건 단지 이 고통을 나누면 반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고전적인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통은 고전을 비웃으며 두 배가 되었다. 다시 두 배가 되었다. 식은땀 몇 줄기가 흐르고 야간모드를 켠 액정화면처럼 시야가 노래진 뒤에야 나는 엉덩이를 오므리고 운전석을 향해 뚱기적거리기 시작했다. 월요일 오전 넘쳐나는 교통량에 짜증이 잔뜩 난 기사님을 향해서.

기사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조심스레 정차를 요구하는 나를 곁눈질하면서 어이가 없다는 티를 과하게 낼 뿐이었다. 이해는 간다. 자고로 사람이나 짐을 실어나르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은 특히 길흉을 따지는 데 민감하다고 하지 않던가. 월요일 첫 운행하는 차에 올라탄 승객이, 간접화법이긴 하지만, 똥을 언급했으니. 아무튼 당시 나는 남의 길흉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 지금이었다면 미국화학학회의 발표 기사를 스마트폰에 띄운 뒤 마패처럼 꺼내 들어 그 권위에라도 기댔겠지만.

마지막으로 바지에 용변을 본 것이 초등학교 몇 학년 때였더라. 그때는 40명 넘는 사람이 지켜보는 공개적인 장소가 아니었을 텐데. 조만간 맞닥뜨릴 나의 드라마틱한 퇴행이 그려져 절망적으로 뒤뚱거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벌어질 사태를 예감한 영혼은 더럽혀질 육신에서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때 버스가 한 차선 오른쪽, 다시 한 차선 오른쪽, 그리고 결국 휴게소 들어가는 차선으로, 오, 자비로운 기사님이여, 방향을 틀었다.


어떻게 상황이 마무리되었는지 세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일촉즉발의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앞문이 열린 후 아주 잠시, 남은 힘을 끌어모아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은 기억난다. 지극히 사적인 사정으로 승객들의 시간을 뺏는 건 아닌가 싶은 괜한 오지랖이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절반에 가까운 승객들이 마치 화장실이 급했던 사람처럼 일어나 앞 다투어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의 짐을 덜었고, 오, 자비로운 승객들이여, 잠시 후엔 육신의 짐마저 덜 수 있었다.


참, 당시 선배는 청첩장을 돌리러 가는 길이었다. 행여 나의 소란으로 선배의 결혼식에 부정이 탈까 얼마간 걱정했지만 선배는 2세를 얻어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선배의 가족과 선배의 결혼 생활에 축복이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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