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위기를 잘 극복해 냈다고 안도하며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던 바로 그때, 그가 자리를 수습해 다시 의자 위에 올려둔 백팩이 방금 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미끄러지면서 안에 들어있던 물건들이 더 많이 더 멀리까지 쏟아진 것이다. 이번에도 누구도 가방을 건드린 사람은 없었다. 떠난 줄 알았던 개구리가 아직 그를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다. 돌발성과 현장성이 공연의 성패를 결정하는 마술 공연에서 이 정도의 미끄러짐은 마술사의 개구리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일까. 마침내 음악이 끝나고 무대에 암막이 드리워졌을 때, 마술사는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자세로 바닥에 앉아 고꾸라진 그의 백팩을 붙잡고 있었다. 진짜 비극은, 미끄러짐의 순간은 통과의례처럼 넘어서면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처럼 늘 곁을 따라다니다가 가장 무방비한 순간에 언제든 몇 번이고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이었다.
그때 왜 내 손은 박수를 치고 있었을까?
일곱 번째 순서로 그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매번 한 타임씩 마술 공연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쳐왔기 때문에 반작용처럼 터져 나온 것일까. 아니면 다시 한번 찾아온 위기의 순간에 그가 굴복하지 않기를 바라며 방금 전처럼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응원을 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두 번째로 가방이 쏟아진 후 마술사가 널브러진 물건들을 줍기 위해 무릎을 꿇자, 때마침 음악이 끝나고 조명이 꺼진 그 운명 같은 피날레에 나 또한 무릎을 꿇고 경외감에 사로잡혀 박수를 보낸 것일지도. 그러나 이번에는 나의 박수 소리만이 마치 텅 빈 것처럼 조용해진 관객석을 울릴 뿐이었고 일행의 만류에 정신을 차린 나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두 손을 내렸다.
그의 순서를 끝으로 모든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관객 투표와 심사위원 점수를 바탕으로 일곱 명의 참가자 중 1, 2, 3등을 매기는 집계가 이루어졌다. 짧은 인터미션 시간동안 가족이며 친구들과 공연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7번 참가자는 소극장 한편에 앉아 홀로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사회자가 다시 무대에 올라 잔뜩 뜸을 들이며 투표 결과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호명이 이루어진 것은 3등에 해당하는 인기상이었다. 인기상은 심사위원 점수와 무관하게 관객 투표로만 결정이 되었기 때문에 이 상만큼은 7번 참가자의 몫이 분명했다. 첫 번째로 가방이 넘어졌을 때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그에게 쏟아진 박수갈채와 환호성이었다. 두 번째로 가방이 넘어졌을 때도 만약 음악이 끝나지 않았고 시간이 남아있었다면 더 큰 응원의 함성이 이어졌을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언젠가 오늘의 그처럼 아무도 던지지 않은 돌에 맞아 이마에 혹이 나본 적이 있고, 제 발에 스스로 걸려 넘어져 코가 깨져 본 적이 있으므로. 더 이상 그를 쓸쓸하게 남겨둘 수는 없었다.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던 그도 슬며시 사회자 쪽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제 7번 참가자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깜짝 놀라며 무대에 나가 상을 받을 차례였다.
잠시 후 1번 참가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대에 올라 멋쩍게 상과 꽃다발을 받고는 관객들을 향해 흔들어 보였다. 그가 자리로 돌아가자 사회자는 주위를 환기하는 멘트를 던진 후 2등을 호명할 준비를 했다. 2등은 열정상. 관객 투표와 심사위원 점수를 각각 50퍼센트씩 합산해 평가하는, 이 공연을 가장 열심히 준비했고 열정적으로 진행한 주인공에게 돌아가는 상. 가방이 쓰러지기 전까지 그는 고난도의 마술을 훌륭히 선보였다. CD를 활용한 마술은 오브제의 크기가 커서 잘 가려지지 않기 때문에 다른 부류의 마술보다 정교한 준비와 기술 연마가 필요했다. 마술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 심사위원이나 마술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그 기술을 익히기 위해 그가 얼마나 오랜 기간 치열하게 연습을 해왔는지 눈치챌 수 있을 것이었다. 인기상이 아니라면 열정상만큼은 7번 참가자의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온 마음과 온 열정을 쏟아 최선을 다해본 적이 있고, 그러한 노력과 무관한 결과를 맞이해본 적이 있으므로. 그러나 이번에 그는 아까와 달리 자신의 호명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애꿎은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며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일렀다. 물론 마술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도 있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건 열정상이 아니던가. 이제 정말로 자신의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가 깜짝 놀란 채 무대로 나가 눈물을 머금고 상을 받을 차례였다.
잠시 후 4번 참가자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무대로 뛰쳐나갔다. 소감을 말하던 중에는 울컥하는 감정을 다스리느라 잠시 숨을 고르기도 했다. 2등까지 시상이 끝나자 무대 위에는 핀 조명 하나만 남고 모든 조명이 꺼졌다. 사회자는 한 층 더 목소리를 낮게 깔고 분위기를 잡으며 천천히 1등 수상자의 점수 집계 방식을 설명했다. 관객 투표 30퍼센트와 심사위원 점수 70퍼센트를 합산해 평가하는 1등은 우수상. 그야말로 마술 공연을 가장 멋지게 해낸 사람에게 돌아가는 상이었다. 관객들은 다 같이 숨을 죽이며 과연 오늘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 사회자의 멘트에 귀를 기울였다. 7번 참가자는 이제 돌아갈 채비를 하며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나는 그가 섣불리 자리를 떠나지 않기를 바라며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초조하게 사회자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자 모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과연 오늘 마술 공연의 주인공은 바로!”
6번 참가자와 그의 친구, 가족들의 환호 소리로 시상식은 막을 내렸다. 박수를 치며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7번 참가자는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모두가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수상자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아무도 가장 마지막 순서에 일어났던 해프닝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그런 일이 벌어진 적 없었던 것처럼, 혹은 애써 함께 그 사실을 기억 저편으로 묻어주려는 것처럼.
나는 오늘의 경연을 위해 가장 먼 곳에서 왔다는 그가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어두운 밤 자신의 고향에 도착했을 때, 긴 여정의 끝에 몰려온 피로를 못 이겨 곧바로 깊고 단 잠에 빠져들기를 바랐다. 그의 몫의 꿈은 모두 내가 꿀 테니 공연이 끝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소극장처럼 고요하게 잠들기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내일의 개구리가 딸꾹, 장난을 걸어 올 테니.
그날 밤 꿈속에서 나는 7번 참가자와 방방을 탔다. 팝콘처럼 튀어 오른 몸이 바닥으로 고꾸라질 때 그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미끄러졌지만 이번엔 실망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웃음을 터트렸는데 실제로는 그의 웃는 표정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얼굴이 약간 흐릿하게 보였다. 중심을 잡으려 할수록 더 우스운 포즈로 떨어져 넘어지는 그에게 나는 “그치? 그치?”라고 물었고, 그는 “맞네, 맞네!” 답했다. 방방을 타는 우리는 이미 꽤 친근했다. 더 높이 더 높이 뛰어 오르기 위해 발을 구르다가 힘이 들면 방방 위에 누워 구름을 구경했다. 우리가 누워있을 때면 나의 개구리와 그의 개구리가 대신 방방 위를 뛰었다. 방방의 리듬을 타고 우리의 개구리들은 거의 날아다녔다. 땅 위에서와 다르게 우리는 개구리의 팔짝거림에 몸을 맡겼다.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실없이 웃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