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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킨좀비 Oct 05. 2024

절대 XX을 보면 안 돼

edited by 초조

  어느 여름날, 저는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천장은 직사각형의 타일로 이루어져 있었고, 하나의 타일을 삼등분하면 정사각형 세 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저 타일은 삼대 일의 비율인 셈이지요. 참 애매한 비율이구나, 라는 생각도 잠시.


  “뭐 봐?”


  제 시선이 천장에서 미끄러져 말을 건 사람에게로 향했습니다. 희고 갸름한 얼굴을 마주한 순간, 저는 약간의 공포심을 느끼고 황급히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리곤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것, 무의미한 패턴들에 대해 애써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을 걸어온, 희고 갸름한 얼굴을 한 제 친구는 잠깐동안 같이 천장을 올려다보는 것 같았지만 금세 흥미를 잃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번엔 조심스럽게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사각형의 바닥 타일을, 그리고 그 타일을 딛고 서 있는 갸름한 아킬레스건과 봉긋한 복숭아 뼈 한 쌍을 발견합니다. 그 위로 뻗은 종아리가 어떤 모양의 알을 품고 있는지 주시하려던 찰나.


  “뭐 봐?”


  다시 한번 물어오는 친구의 말에 저는 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어느샌가 다리를, 타인의 맨다리를 뚫어져라 살펴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화들짝 놀라 친구를 돌아봤습니다. 남의 신체를, 특히나 사회적으로 성적인 것이라고 기호화된 신체를 쳐다봐서는 안 되지… ‘그것이 다리든, 가슴이든. 아무리 친구 사이여도 말이야.’ 그러한 생각에 다다른 순간 저도 모르게 친구의 얼굴 아래로 시선이 미끄러졌습니다. 오늘따라 푹 파인 옷을 입고 온 친구의 가슴골이 눈에 걸렸습니다. 온종일 쳐다보지 않으려고 시선을 피해온 그곳이었습니다.


  황급히 눈을 피했지만 친구는 제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었는지 눈치챈 것 같았습니다. 변명하고 싶은 말들이 한 번에 떠올라서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그러니까 말이야…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 곳으로 시선이 미끄러져버리는 것, 그것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했을 때 코끼리를 떠올리고야 마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의 정신은 부정이나 부재를 다룰 때면 먼저 대상을 떠올리고, 그다음에 그것을 우회하는 생각의 회로를 만듭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신의 구조물은 늘 그 중심에 부정해야 하거나 부재 상태인 대상을 존재시킵니다. 그러니 우리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자고 한 순간부터 코끼리를 중심으로 한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정신의 구조물에서는 미끄러짐이 아주 쉽게 발생합니다. 생각은 본래 자유분방한 것이기에 가두려고 할수록 힘이 응축되기 마련이거든요. 정신의 구조물에 가로막혀 생각의 회로 속을 헤매던 생각은 방심한 순간 의식의 제어에서 벗어나 폭발적인 힘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정신의 구조물이 은폐하고 있던 중심부로, 숨기려 하는 그 대상을 향해 돌진하고 말지요. 그건 인간의 고유한 속성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며 지하세계를 빠져나오던 오르페우스가 마지막 순간에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고야 마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애초에 가슴을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발원한 것일까요? 흔히들 금기는 욕망을 전제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금기가 강해진 시대에서는 금기와 욕망의 순서가 역전되기도 합니다. 저기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보이나요?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친구의 시선이 카페 한쪽 구석으로 향한다.) 우리는 저곳에 문이 있다는 사실도, 그 뒤에 공간이 있다는 사실도 방금 전까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푯말을 본 순간부터 저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지고, 문이 열릴 때마다 저도 모르게 그 안을 힐끔힐끔 훔쳐보게 되지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금기가 역설적이게도 저곳을 출입하고 싶어 하는 ‘관계자 외’의 욕망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렇듯 금기가 욕망에 앞서서 존재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금기가 발달한 오늘날의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요, ‘관계자 외’인 당신 앞에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푯말이 달린 문이 열린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요? 당신은 정말 그 문 안의 공간으로 발을 내딛게 될까요? 마구 출입하여 ’관계자‘들이 우려하던 바로 그 일을 하고야 말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자신에게 금기로 존재하던 문 너머의 공간을 일별하고 그 정체를 확인하는 데에서 자신의 욕망을 해소할 것입니다. 그건 진짜 욕망이 아닌, 오로지 금기에 의해 상상된 가짜 욕망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가슴을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은 제게 가슴을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는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욕망에 앞서는 금기를 학습했을 뿐이고, 금기로부터 상상된 가짜 욕망만을 수행했을 뿐이니까요.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저는 문화적 인간으로서 남의 가슴을 보거나 하지 말라는 금기를 학습했고, 그 금기는 제 머릿속에 가슴을 중심으로 한 구조물을 만들었습니다. 저에게는 가슴에 대한 욕망(동경이든, 성적 호기심이든)이 부재했기에, 제어할 욕망이 없어진 사고는 구조물의 중심부를 의식하다 못해 상상된 가짜 욕망을 품고 은폐된 대상을 향해 미끄러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 시선이 친구의 가슴으로 향하고 만 것은 지극히 문화적이고 건전한 사고에서 비롯된 불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


  “개소리하지 마.”


  친구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놀란 나머지 딸꾹질을 할 뻔한 제게 ‘지금 그 일련의 생각들이 제일 불순하고 변태적이야.’라는 일갈이 날아와 꽂힙니다. 저에 대한 변호가 오히려 저의 죄를 입증한 것일까요? 목이 타는 것이 느껴져 차가운 음료를 담고 있던 컵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들이 식은땀처럼 보여서 동질감을 느낀 것도 잠시, 물기로 인해 손에서 미끄러진 컵이 테이블 위를 구르고 음료가 친구 쪽으로 왈칵 쏟아지고 맙니다. 그 순간, ‘음료가 가슴에 튀면 어떡하지? 그랬다간 이번에도 가슴을 봐야만 할 것이고 친구의 오해는 더 깊어질 텐데-’하는 생각이 들며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쪽으로 사고가 굴러갑니다. 아니, 미끄러집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뻗은 손은 친구의 가슴을 더듬고 맙니다. 저는 깍!하는 단말마를 내지르며 황급히 손을 떼어냈다가 발이 미끄러져 뒤로 자빠집니다. 되려 음료를 뒤집어쓴 저를 의아함과 경멸, 한심함을 담아 바라보는 친구를 올려다보면서, 그 장면에 속한 저는 하나의 사실을 인정하고야 맙니다. 인간의 사고방식이, 그 구조물이, 문화적 금기가 어쨌다고 말하기에는 그냥 저는 잘 미끄러지는 인간인 것 같다고요. 통제할 수 없는 실수, 어긋남, 불운이야말로 저의 발 밑 지반이라고요.


  저를 내려다보며 친구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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