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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미 Apr 27. 2021

04. 첫 기획 기사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신문사에 들어와 써 본 기사라곤 원고지 5매짜리 짧은 보도형 기사뿐이었다. 그런데 나보고 중요한 기획 기사를 쓰란다. 기획 기사 쓰는 건 좋다. 어차피 한 번은 넘어야 할 산과 같은 일이니까. 그런데 학생회의 상반기 평가 기사를 담당하란다. 물론 혼자 담당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모든 취재를 다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고작 수습기자한테 중대한 기사를 맡기다니 당시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하라는 대로 해야 하니 맡겠다고 말은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엄청 힘들진 않았고 그냥 힘들었다. 상반기 평가를 위해 그동안 그들이 진행했던 행사들, 남은 행사들, 행사를 진행한 후 학생들이 얼마나 만족하는지 등을 조사하는 건 그나마 쉬웠다. 게다가 학생회와의 인터뷰는 내가 시간이 맞지 않아 다른 동기가 서기로 들어갔다. 그래서 살짝 동기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몸은 편하니 좋았다(좀 이기적인 듯).


그러나 힘듦은 그 후부터였다. 서기로 들어간 동기의 글과 동의받은 후 진행한 녹음을 비교하면서 글을 정리하는데 동기의 글에는 오타가 너무 많았고 녹음 파일 속 목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았으며 신문사 내부에 워낙 시끄럽다 보니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난 수습기자인데.


꾹 참고 일반 글을 기사체로 바꿔 동기와 함께 한 기사를 만들었다. 이제 남은 건 부장님께 퇴고를 받는 것이다. 착한 부장님이었지만 퇴고를 받을 때만큼은 조금 무서워 쭈뼛거리며 원고를 내밀었다. 상반기 평가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분량도 많아 부장님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살짝 무서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자리에 돌아가 퇴고를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볼펜 소리가 멈추더니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벌써 퇴고를 다 하셨나 싶어 슬쩍 보니 원고를 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계셨다. 그냥 통째로 고치시는 것 같았다. 속으로 큰일 났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산책을 나섰다.


20분간 밖에서 산책하다가 사무실로 들어가니 이미 퇴고가 다 된 상태였다. 동기는 어느새 퇴고받은 걸 다 고치고 잠시 지인을 만나러 나갔단다. 나는 조용히 동기가 고친 한글 파일을 받아 내가 담당한 부분을 고쳐갔고 그 사이에 국장님과 부장님은 치킨을 시켰다. 나는 묵묵히 계속 기사를 고치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동기가 고쳤다는 부분이 딱 한 단락만 고쳐지고 다른 부분은 단 한 글자도 고쳐지지 않은 것이다. 열이 받았다. 왜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기장이다'이라는 생각으로 꾹 참고 동기가 담당한 부분까지 모두 고친 후 다시 부장님께 드렸다. 그때 마침 치킨이 도착했다. 국장님과 부장님은 내일마저 퇴고하고 치킨이나 먹자고 말씀하셨고 난 동기 생각이 났다. 그래서 동기에게 전화를 했다. 동기는 아직 지인을 만나고 있었다. 그 말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화가 났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화 아닌 화를 냈다.


"너 기사 제대로 고친 거 맞아? 확실해? 거의 다 안 고쳐져 있던데. 어떻게 된 거야?"


글로 보면 그냥 사실 확인을 위한 물음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내 말투는 내가 느끼기에도 날카로웠다. 당황한 동기는 어버버거렸고 조금 미안해졌다.


"됐고 빨리 와. 기사는 내가 다 고쳤으니까 와서 치킨이나 먹어."


하지만 화는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말투 그대로 치킨 먹으라며 동기를 다시 신문사로 불러들였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00이 츤데레야 뭐야"라며 웃었다. 나는 멋쩍은 듯 웃으며 자리에 앉아 치킨을 먹었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동기가 신문사로 들어왔다. 그때 나는 이미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기에 씩 웃으며 동기를 맞이했다. 동기의 표정엔 미안한 기색이 역력해 그냥 툭치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치킨을 가리키며 먹으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날은 지나갔고 다음날 난 퇴고 지옥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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