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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미 Apr 13. 2021

03.세상 소심이가 기수 장을 맡다

내가 기장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세상 소심이던 내가 고향에서 멀어지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다 보니 성격이 변한 게 스스로 느껴졌다. 앞으로 계속 같이 생활할 동기들과 하루라도 빨리 친해지기 위해 먼저 나서 다 같이 술 마시자고도 하고 같이 공부하자고도 했다. 


각자의 일이 있다 보니 모두가 함께 모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선배 기자의 조언을 구했더니 아예 날을 잡고 동기 회식을 추진해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소심 모드가 발동해 단톡에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본 선배는 답답했는지 휴대폰을 빼앗아 투표를 진행하고 가장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날짜를 잡아 그대로 회식을 진행시켜버렸다. 나는 살짝 어안이 벙벙했지만 어쨌든 모든 동기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건 좋았다. 선배들보단 말도 잘 통할 것이고 동기끼리 친해져서 나쁠 건 없으니.


약속 당일, 신문사에서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19시쯤에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역시 기자들이라 그런지 약속 시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지켰다. 그때는 바이러스의 영향이 없었던 상황이라 9명이 도란도란 모여 앉았다. 다들 어색한 기운에 서로 눈치만 보다가 누군가의 "우리 음식부터 시킬까요?"라는 말에 시선은 메뉴판으로 향했고 자연스럽게 말도 트게 됐다. 거의 밥 겸 술이라 피자, 치킨, 떡볶이 등 시킬 수 있는 건 다 시켰다. 동기 회식을 가지기 전에 만났던 몇몇은 나름 서로 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은 붕 뜬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흐르다 술과 함께 음식들이 나오고 한 잔, 두 잔 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야기의 흐름은 끊겼고 이 어색함을 풀 마지막 방법으로 게임을 시전 했다. 술자리 분위기를 한 번에 끌어올리는 건 게임이었으니까.


당시 내가 아는 게임은 몇 없었지만 한 번 시작하니 다행히도 모두 함께 흥이 올라 정신없이 게임을 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웃고 떠들며 즐기게 돼 분위기는 살아났다. 그러던 중 한 동기에게 국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바로 기수의 장, '기장'을 정하라는 내용이었다. 기장은 쉽게 말해 반장이나 과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국장님이 전달 사항을 말해주면 그대로 동기들에게 전파하는 그런 역할.


무언가를 맡아 책임지고 많은 사람을 끌어가는 역할은 부담스러워 조용히 있었고 바람대로 후보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나왔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던 찰나 눈이 마주친 동기가 나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김식미 추천합니다!"


눈앞이 아찔했다. 그래도 투표로 진행하고 자진해서 기장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으니 내가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안타깝게도 내가 됐다. 그냥 동기들은 내가 고통받는 게 좋은가보다. 중간에 투표 현황을 보니 거의 비슷하게 투표를 받아서 난 절대 뽑지 말라니 오히려 나에게 몰려버린 것이다. 투표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며 재투표를 요구했으나 동기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국장님에게 내가 기장이 됐다고 연락했단다. 머리가 지끈거렸으나 이미 벌어진 일. 뭐, 어쩌겠는가. 하라면 해야지.


그렇게 세상 소심하던 소심이가 기장을 맡으며 다양한 일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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