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
*온전히 제 입장에서, 제 기억을 되살려 쓰는 글입니다.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거의 죽다 살아난 첫 기획 기사를 끝으로 난 방학을 맞이했다. 대학의 방학은 중고등학교 때 방학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길다. 그 기간 동안 푹 쉴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다. 아직 1학년이었으니까. 그런데 난 신문사란 변수를 만났고 방학 두 달 중 한 달을 신문사에 바쳐야만 했다.
방학 중에 활동한다 해서 '방중 활동'이라 불리는 이 기간에는 다른 부서의 일을 해 볼 수도 있고 학기 중에 받지 못한 교육을 받을 수도 있으며 실력을 보충할 수 있다. 살짝 혼란스러운 기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 방중 기간만 잘 넘기만 정기자로 변환되고 수당을 받으며 기사를 작성할 수 있게 된다. 그 수당을 목표로 설정하고 잘 버티자는 마음으로 시작하려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방중 활동을 시작하고 당시 노트북이 쓰레기였던 나는 사무실에서 사용하지 않는 컴퓨터에서 작업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자리는 내 자리가 되었고 다른 동기 A도 한 자리에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해 다른 동기 B는 불만이 있었나 보다. 정기자도 아닌데 자리를 임의로 정해 쓰는 게 불평등하다나. 나는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수용해 다시 쓰레기 노트북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나 문제(?)는 A였다. A는 신문사 외에도 하는 게 많아 투 모니터로 작업했는데 그 짐을 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공용 책상 위에 올려둔 것이다. 공용 책상에서는 회의를 하기도 하고 다른 기자들이 노트북으로 기사를 작성하기도 하며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그렇게 큰 모니터를 가져다 놓으니 B는 또 불만을 토로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나도 B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난 A에게 넌지시 회의 때나 다른 거 할 때는 치우는 게 어떻냐고 말했고 A는 내 말을 수용하며 회의 때마다 다른 곳에 잠시 옮겨두곤 했다. 그런데 B는 그냥 공용 책상에 올려두는 거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계속해서 그 얘기를 A가 아닌 기장인 나에게나 A와 친했던 C에게 말했다. 듣다 못한 C가 "왜 그걸 나한테 말해요. 직접 A한테 말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B는 큰 소리로 그게 무슨 태도냐며 아무리 동기라도 나이, 학번은 자기가 더 높은데 그게 예의가 맞냐고 따졌다.(참고로 C는 과거 트라우마 때문에 큰 소리가 나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한다.) 그 반응에 C는 울먹이며 자신의 입장을 말했다. 그러자 B는 더욱 역정을 내며 말했고 보다 못한 다른 기자들이 B를 데리고 나갔다.
혼란스러웠다. 어느 포인트에서 B가 화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난 기장이기에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사람 싸움에 끼어들 게 됐다. C와 먼저 얘기를 해보고 밖에 나가서 B와도 얘기를 해봤다. 내 입장에선 C 행동에 공감이 되고 충분히 그럴만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위로만 했던 것 같다. 그 후 B와 이야기를 해봤다. 그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원래 욱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에게 예의 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리 자신보다 나이가 어려도 먼저 말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B는 C가 퉁명스럽게 말한 것에 대해 욱했고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는 말이 된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다짜고짜 말을 놓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기본적인 예의다. 또한 선배들, 즉 나이가 자신보다 많은 사람에게도 존대를 하며 그를 존중해줘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예의를 중요시한다던 C는 전자는 어느 정도 지키는 것 같지만 후자는 전혀 지키지 않고 있었다. 즉 어린 사람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한다면 엄청 화를 내는데 정작 자신은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대하고 있다는 말이다. 또한 나이 어린 사람에게 말만 편하게 안 했지 아랫사람 대하듯 했다. 특히 나한테는. 내로남불.
정말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며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줬다. 그렇게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그날 밤은 지나갔다. 다음 날 신문사에 출근하니 신문사 총괄국장님(행정업무 담당 조교 선생님)이 나를 부른다. 뭐에 홀린 듯 멍한 상태로 조교실에 들어가니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을 하는데 왠지 서러워졌다. 내가 기장이라는 역할 때문에 이 싸움에 끼여서 다른 사람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렇게 눈물을 꾹꾹 참으며 설명을 했고 총괄국장님은 일단 알겠다고 고생했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그 사건은 만나는 선배기자들마다 설명해줘야 해 점점 지쳐갔다. 그 와중에 B는 나에게 기장 권한으로 동기들을 소집해 회의를 하자고 강요했다.
난 그런 권한을 가진 적 없다. 기장은 권력을 가진 직책이 아니다. 그냥 동기들의 의견을 모아 국장님이나 부장님에게 전달하고 국부장님들의 의견을 모아 동기들에게 전달하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쨌든 이 사건을 한 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과 몇 가지 우리끼리의 규칙을 정해야 편할 것 같은 마음에 다른 동기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날짜를 잡아 회의를 열었다. 일단 난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동기들에게 사과를 했다.
"기장으로서 동기들의 불만 사항을 수용해 바로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점, 제대로 중재하지 못해 싸움이 발생한 점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전하겠습니다."
솔직히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게 뭔데. 난 이제 갓 성인이 돼서 처음으로 어떤 단체에 들어갔고, 처음으로 역할을 맡아서, 모든 게 처음인 신입생일 뿐인데.
난 울분을 꾹 참고 회의를 진행해 갔다. 각자의 불만 사항, 각자가 지켜줬으면 좋겠는 점, 그에 대한 각자의 생각 등등. 역시나 불만 사항은 B뿐이었다. 난 분위기가 너무 심각해지면 다시 싸움으로 번질 것 같아 B의 말을 수정하고 가다듬어 좋은 표현으로 바꿔 말했고 중간 중간 장난끼 있는 말도 했다. 그렇게 분위기를 조절하며 회의를 진행했고 몇 가지 유의사항만 정한 채 회의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난 그 사건이 마무리 되고 B와의 갈등이 사라질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