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스낵. 그리고 김밥
2016년. 한국의 미디어 시장은 변곡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국들의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는 등 너무나 자명한 팩트들 말고, (주)칠십이초를 운영하며 지금까지 느낀 것들로 근거를 대보자면 아래와 같다. (다시말하면, 데이터에 근거한 자료들은 널려있으니, 개인적인 의견을 담는다)
1. 작년까지 별 변화가 없던 플랫폼들이 변화하고 있다. 콘텐츠 유통(수급) 정책과 구조에 변화가 생기고 있고, 그에따라 콘텐츠 제작사의 유통수익 모델이 다변화되고 있다. 그리고 유통수익이 점점 유의미한 규모가 되어가고 있다.
2. 방송국 콘텐츠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디지털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다.(일시적일 수도 있다)
3. TV 시장에서 빠져나와 온라인(모바일) 영상 광고 시장으로 넘어오는 대기업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뭐 다른 점들도 많이 있겠지만, 직접 겪고 있는 느낌적인 이유는 위와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우리 72초TV의 콘텐츠가 시장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니, 우리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그래서 내년에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살짝 이야기해보려 한다.
1. 스낵콘텐츠?
작년, MCN이니 크리에이터니 하는 단어들이 범람하던 시절, 함께 많이 등장한 용어가 스낵콘텐츠였다. 물론, 스낵콘텐츠라는 용어가 작년에 나온 것은 아니다. 나온지 한참 된 용어이기는 하나, 국내에서는 작년에 제일 많이 언급된 단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구체적인 데이터를 찾아보지는 않았다)
스낵콘텐츠는, 말 그대로 먹는 "스낵"의 느낌을 가져온 용어다. 쉽게 먹을 수 있고, 한봉지 먹고 나면 끝나는, 한입꺼리 먹거리. 그렇게 소비되는 짧고 가벼운 콘텐츠라는 의미이다.
스낵콘텐츠가 떠오르게 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유튜브와 페이스북이 아닐까 싶다. 즉, 사용자가 영상을 쉽게 올릴 수 있는 환경과, 그것이 쉽게 퍼질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된 것이다. 그러면서 작년에는 이런 말까지 나왔다.
"스낵콘텐츠가 뉴미디어 시대의 대세가 될 것이다"
2. 그럼 밥콘텐츠는?
아이들은 스낵을 좋아하고, 어른이 될 수록 스낵을 좋아하는 사람이 줄어든다.
새로운 스낵은 시간이 지날 수록 훨씬 다양해지고 맛도 좋아진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나이가 먹으면서 입맛이 변하고, 점점 밥을 찾는다.
먹을 수 있는 스낵이 어렸을 때보다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스낵의 매출은 점점 증가하지만, 그렇다고 밥시장을 뺏어오지는 못한다.
물론, 어른들이 좋아하는 스낵도 함께 많아진다.
그런데, 사람이 스낵만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인류 보편적으로 "스낵"이라는 말은 곧 그것은 밥, 그러니까 "주식"은 아니라는 얘기다. 스낵이 잠깐의 허기를 달래주고, 내 입의 심심함을 달래줄 수는 있으나, 끼니를 때워주거나 나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채워주기는 어렵다.
콘텐츠 시장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이름이 "스낵"이라고 붙어서였을까.... 스낵콘텐츠는 주류시장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있다. 스낵콘텐츠가 새로운 밥이 될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이게 웬걸. 오히려 밥이 스낵시장을 넘보고 있다. 온라인에서 많이 소비되고, 그러면서 그나마 많은 유통 및 광고 수익을 가져가는 콘텐츠들은 여전히 기존 방송국 혹은 영화 콘텐츠들이다.
스낵콘텐츠들이 사람들의 새로운 입맛을 돋구어 주고 새로운 요기 꺼리들을 제공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콘텐츠로부터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모두 채워주기에는 아직 역부족으로 보인다.
3. 중요한건 영양분이다
그런데 사실, 스낵이냐 밥이냐의 구분은 양의 차이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소식을 자주 하는 사람이 있고, 저녁만 황제처럼 먹는 사람도 있다.
한 끼의 절대적인 양은 그것이 식사인지 스낵인지 구분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루에 먹는 것들이, 내가 살아가기에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있는가이다.
영상의 길이가 짧다고 무조건 스낵이라고 하는건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길다고 해서 무조건 밥도 아니라는 얘기다.
길이와 상관없이, 우리가 콘텐츠를 보았을 때, 우리에게 충분한 볼만한 가치를 제공했다면, 그 콘텐츠는 밥으로 인정 받아야 한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길면서도 밥이 아닌 콘텐츠들과 짧지만 밥인 콘텐츠들이 온라인에서는 어느정도 구분이 가능하고, 그러한 것들이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4. 72초의 콘텐츠는 그럼 어떤 먹거리?
이게 참 어렵다.... 그럼 우리는 어떤 먹거리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굳이 표현하자면, 고급김밥??
김밥은 참 묘한 존재다.
스낵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정식 밥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고급 김밥을 만들어 비싸게 파는 레스토랑들도 있다.
김밥은 한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김밥만 먹고 살기는 좀 그렇다.
김밥의 김을 터트려 큰 그릇에 모아 담으면 그건 곧 비빔밥이다.
다양한 종류의 김밥 재료들을 나눠 담으면 한정식 한 상도 만들 수 있다.
그것도 매우 다양한 정식 코스가 가능하다.
다시 말하자면,
제대로된 한상 차림이 가능한
매우 다양한 재료들이
먹기 쉬운 형태로 모여있는 것이
김밥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콘텐츠가 곧 우리가 만들고 있는 72초TV만의 콘텐츠들이 아닐까 싶다.
5. 그래서 내년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다양한 김밥을 만들어왔다면,
내년에는 한정식도 만들겠지.
원하는 때에 따라 골라 드시라고.
그리고 동시에
중국에서 김밥을 활용한 훠궈를
미국에서 김밥을 활용한 햄버거를
유럽에서 김밥을 활용한 파스타를
만들지 않을까.
그게 어떤 음식이고, 어떻게 만들어야 그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을 지는 그 나라 요리사들과 함께 잘 만들어봐야 할테고.
아.. 배고파.
내일은 어떤 김밥을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