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가치관

비혼주의자 말은 알겠지만 전 혼인주의자입니다.

by 치기


누군가를 완전히 신뢰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사람과 결혼을 하지 않을까. 내 속마음을 다 드러낼 수 있는 관계는 결혼이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마침 내 생각과 비슷한 사랑에 대한 신념과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적힌 <사랑의 생애-이승우 작가>의 구절을 필사해 보았다.




“준호를 애타게 만든 이 대단한 매력의 주인공인 민영이 생각하는 남녀 사이의 사랑은 매우 불완전하고 변덕스러워서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남녀 사이의 사랑이 사람의 감정과 감각에 의지해서 이루어지는 한 불완전하고 변덕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사람의 감정이나 감각이 불완전하고 변덕스러우며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감정도 믿을 수 없고 감각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감각은 본질적으로 육체적인 것이므로 육체적 접촉에 의한 흥분을 사랑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고 그녀는 믿었다. 그녀가 한사코 남자와의 키스를 거부한 것은 그다음에 이어질 육체적 접촉을 경계하기 때문이었다. 준호와는 다른 견해이지만, 결혼은 그처럼 변덕스럽고 불완전한 사랑을 완전하게 보장해 주는 장치로서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중요했다. 감정의 변덕스러움 말고 그에 못지않게 치명적인 것이 또 있다. 어떤 사람도 온벽하지 않다는 것이 그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맺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보장해 주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는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일부만, 예컨대 마음에 드는 부분만 사랑할 수는 없으며, 그래도 안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요소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정말 참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기 마음에 드는 부분만 취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버릴 것인가. 가슴은 취하고 다리는 버릴 것인가. 그럴 수 있는가. 가령 잠들기 전의 달콤한 키스는 취하고 그 사람이 코 고는 것을 버리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그 사람과의 키스를 즐기려면 그 사람의 코골이도 용납해야 한다. 키스와 달콤함을 제공한 사람과 코를 심하게 골아 잠을 방해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감정과 감각에만 의존할 때 사람은 키스의 달콤함만을 기대하고 바라게 된다.


감정이나 감각이 아니라 그보다 강제적인 어떤 것, 이를 테면 의지에 기반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의지에 입각하지 않은 사랑은 일관성 유지가 힘들다. 결혼 제도는 장치로서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키스의 달콤함을 제공하는 사람이 자기가 사랑한 사람이고, 곁에서 코를 골아 잠을 방해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랑한 사람이 아니라고 제외시켜 버릴 수 있는 인간의 비겁하고 나약한 본성 때문에 사랑은 외부에서 강제된 결혼이라는 의지의 보장을 받아야 한다.”


p104-107




민영이 나인 줄 알았다. 어쩜 이렇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글로 잘 정리해서 담았는지 이승우 작가님께 감사인사를 드린다. 이 책을 읽기 얼마 전 비혼주의자인 X와 혼인주의자인 나 사이에서 결혼 이야기가 오간 적이 있었기에 더 집중해서 읽었다.


결혼은 제도에 불과하고 사랑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의해 훼손되거나 상처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준호의 입장과 비슷한 결을 가진 X 중 하나와는 상반되는 입장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연애에서부터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건데 굳이 결혼을 해야만 신뢰가 생기는 거냐, 바람피울 놈은 결혼해서도 필 것이며 결혼은 서로가 아닌 가족과 재산까지 연결되는 복잡한 것이다. 결혼이라고 해서 사람의 본성까지 거스르게 할 수는 없다. 심플하게 서로 사랑하고 믿으며 평생 동거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그는 언젠가 이런 말도 했다. 인간과 동물의 자제력 차이는 고작 2%밖에 나지 않는다고. 인간도 동물이나 다를 것 없다고.


민영과 같은 입장을 가진 나는 이런 입장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단순 연애관계에서 도의적 선을 넘는 행위에 책임을 묻고 관계에 대해서 무게를 둬야 하는 것 아닌가? 이혼을 할 수 있다고 한들 결혼이라는 장치 없는 연애보다 본인의 행실에 대해 곱절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이다. 하루아침에 뒤돌릴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배신에 갱생의 기회는 없다. 한 번 잘못하면 관계의 종말이 된다. 당신 말대로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자제력 차이가 2%라는 게 반증 아닌가? 동물적 본능으로 라면 몇 명에게 동시에 마음 흔들릴 수 있는 게 사람의 자연적인 반응인데, 과연 단순 책임감이라는 단어만으로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며 살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아이까지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평생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만큼의 결심과 책임이 필요하며 배신을 했을 때 벌하는 것 또한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성 문제가 아닌 성격이나 가족 관련 등 그 밖의 문제로 합의하에 이혼은 제외)


결혼주의자와 비혼주의자인 서로의 얘기를 들으면 어느 것 하나를 꼭 짚어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왜인지 모를 찝찝함과 미묘한 수틀림의 잔재가 남아있다.


결국, 서로를 이해하기로 한다. 남으로서.

영원한 길을 함께 할 수 없는 다른 종의 사람인 것으로 마무리한다.


내 진정한 신뢰와 사랑의 시작은 배우자가 될 것이며 그때가 되었을 때 나의 작품이나 추구하는 예술관이 어떤 스타일로 변해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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