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무엇인가를 읽고 (1)
3년 전 읽은 <나란무엇인가-히라노 게이치로>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을 소개하겠다.
분인은 모두 ‘진정한 나’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유일무이한 ‘진정한 나’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까닭에 숱한 고통과 압력을 감내해 왔다. 어디에도 실패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고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끊임없는 부추김에 시달려왔다. 그것이 바로 ‘나’란 무엇인가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내 모습을 보며 진정한 나는 누구지? 하고 혼란스러웠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문장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대체로 사람들과 두루두루 어울리는 편이기도 하고 내 주위에 무리가 만들어질 때도 있었다.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냈고 그런 생활도 즐거웠다. 그런데도 문득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은 화제에 별로 공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재미가 없다기보다 어딘지 모르게 충족되지 않는 느낌이라고 할까. 일주일에 1-2번 회식을 했던 전 직장과는 달리 지금 직장에서는 공식적 자리를 제외하고는 사석으로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이렇게 마이웨이였던 적이 처음이라 괜히 내가 너무 어우러지지 못했나 하고 마음이 쓰게 되고 이 생각은 주말 내내 한쪽 귀퉁이에서 내 체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서로의 예의를 잘 지킨다면야 회사 생활을 하는 방식이 다를 뿐 나쁜 감정이 따로 있는 건 아닐 텐데 괜한 눈치인 것 같기도 하다. 전 직장에서의 나는 공동체와 뒤풀이를 좋아하는 나였다면 지금의 나는 퇴근 후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 변화했을 뿐이다.
취업 준비를 하다 훌렁 떠나고 싶어 제주 스탭살이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스치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대부분 저마다 심지를 가지고 있는 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점이 개개인을 빛나고 뚜렷하게 만들어준다는 것. 사람들과 대화할 때 상대에 따라 내 의견을 숨기기도 분명하게도 하는 나는 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저마다 정의 내릴 수 있는 색상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이색 저색 다 섞여 정체 모를 색인 게 좋아 보이지 않다고 느꼈다. 이런 고민을 품고 친하게 지낸 스탭친구에게 속내를 털어냈다. 나는 나만의 색을 가지고 싶은데 순도 높은 사람들과 대화할수록 나의 의견은 없어지고 수긍만 하는 나를 보게 된다고. 이런 내가 줏대 없어 보인다고. 오히려 친구는 상대에 따라 수용하는 조절 능력이 있는 게 더 좋은 거 아니야? 라며 오히려 멋진 거라고 칭찬해 주었다. 처음에 그 말을 듣고는 위로와 공감보단 많은 고민 끝에 털어놓은 내 속내에 대한 고민이 고민이 아니고 배부른 소리에 불과한가? 나의 고민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언짢았다.
몇 년이 지나고도 계속 그런 고민이 들었다 사그라졌다를 반복한다. 이쯤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의 내릴 수 없는 색상도 내가 정의를 내리면 그만 아닌가?라는 것과 굳이 정의를 내려야 하나?라는 것이다. 그땐 남들도 잘 아는 색을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무엇이든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 멋있어 보였고 자기 확신이 있는 것 같았다. 그 확신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결국 변화한 것도 변하지 않은 것도 내가 그걸 선택했기 때문이고 이런 나도 저런 나도 나의 결정이었다. 나는 심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유연한 심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옛 친구들과 대화할 때의 나와 새로운 친구들과 대화할 때의 나는 다르다. 거기에서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나의 태도는 또 달랐다. 이런 변화무쌍한 나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체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내 안의 심지가 선명해지는 걸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