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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Feb 11. 2022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82. 산복도로, 기억과 삶의 터, 2021


도심재생, 공공개발 정책은

전국적으로 이제 대세가 되었고

수많은 원도심, 구도심이 정비되었다.


아직도 거주지 리모델링과

지역 관광콘텐츠 활성화의 기치 아래

전국이 '고치고 짓고 꾸미는' 중이다.


어떤 곳은 명소가 되었고

어떤 지역은 흉물도 되었다.

하지만 원래 콘텐츠가 그런 것이다.

가요도 영화도 성공률이 10% 미만이다.


부산은 '바다'라는 이점을 안고 있다.

더구나 감천마을 같은 세계적 명소도 있다.


그러나 부산(釜山)의 산()이 갖고 있는

환경도 무시하지 못한다.

등산 좋아하는 나도

부산의 수많은 산을 아직 다 완주하지 못했다.


그리고 산복도로 이곳은 '산'이라기보다는

'산=마을' 개념이라고 한다.

피난지 시절

산을 깎아 만든

마을과 길이 한 몸이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부산 역 앞  

산복도로를 관광상품으로 체험하고 왔다.


물론 학교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그 신선하고 놀라운 경험을

소개, 추천하고자 한다.


일단 코스는 이러하다.

(전문 가이드 없이 누구라도 알아서 갈 수 있지만

전문 여행사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확실히 만족도가 높다)


부산역-텍사스, 차이나타운-

구 백제병원-명란 거리-

이바구 길-초량교회-모노레일-

명란 샵-커피숍-루프탑 풍경-

명란 셀프 쿠킹 클래스-이바구 충전소 등이다.


더 많은 루트가 있긴 하지만

'3시간 코스'로만  답사했다.

지역 전문 여행사

여행 특공대 손민수 사장님이 해설을 해 주셨다.



1. 애매한 텍사스, 한 많은 차이나타운

미군들이 전쟁 때 거쳐가서 '텍사스'라 이름이 붙은

청소년 보호구역.


소련 수교 이후 러시아, 동남아 외지인들이 찾아

독특한 외인 거리가 되었지만,

지자체에서 무리하게 세트장 화하려고

서부영화 배경을 억지로 입히는 바람에

요상한 모양을 하고 있다.


왜관처럼 청관(淸館) 지구로 명명돼

중국인 집단 거리로 유명했던 차이나 타운은

텍사스와 직선으로 연결돼 있다.

전 세계 어디든 만나는 차이나 타운 중에 하나.  


주말이면 유명 만두가게 앞

장사진을 치는데 나도 자주 가는 편이다.


차이나 타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유명한 중국 본토 체인점

하이디라오도 이곳에 있다.


청나라 사람들의 거주지였다가

여러 지역 중국사람들이 거쳐갔다.

그리고 만보산 사건을 비롯한

한국전쟁과 수많은 사건과 핍박들.


오랜 역정 끝에 그들의 조상이 정착했던 

청관 지구에 후손들이 터를 잡고 정착했다.

 

전쟁 이후 국적이 상실돼

타이완 사람이 되고  

이후에도 수난은 계속됐지만

시베리아의 고려인들처럼

디아스포라들의 아픔은 어디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리에 요리하는 모습과 호객행위로 

시장 분위기가 나는 

요코하마 차이나타운과는 다른

차분한 분위기이다.


외국군대 주둔지 슬럼가 텍사스와

외국인 거류지 차이나타운의  

묘한 역사와 공간 대비가

나그네들의 발길을 잡는다.


2. 구 백제병원

지금은 커피숍, 술집,

창작과 비평 지사 등으로 리모델링된

 백제병원은 일제강점기 

일본 오카야마 의전 출신의 

부산 명지 사람 최용해 의사의

파란만장 일대기와 

예식장 외국공관 등의

수많은 흔적을 거친 벽돌 건물이다.


당시 미려한 디자인과 단단한 시공으로

불탄 흔적이 있음에도 건재하다.

건너편에는 영화에도 배경으로 나왔다는

적산가옥을 꾸민 사진관도 있다.

3. 명란 거리

곧 명명되고 꾸며질 '명란 거리'는 뜬금없다 할 것이다.

사연을 들어보면 그럴만하다.


강원도 명태잡이 배들이

부산항까지 왔던 이유는 신선도 때문이었다고 한다.

서울로 태백산맥 넘어 나르다가는 생선이 썩는다.

그래서 부산항에 집하시켜

경부선 철도를 이용했다고 한다.

그때 보관 창고가 유명한 남선창고.

지금은 '유통'이라는 성격에 맞게

우연히도 지역 마트가 들어서 있고

주차장 안쪽 당시 창고의

벽돌 담벼락 흔적만이 오랜 세월을 증빙한다.


4. 초량교회

이바구길 초입에 연예인을 다수 배출한

전통의 초량초등학교와

고풍스러운 옛 교회가 나란히 있다.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는 세월의 흔적 외에

독립운동의 증거가 홍보되고 있다.

격동의 세월 학교도 교회도 역사의 두께가 내려앉았다.


5. 산복도로, 계단 문화, 모노레일

처음에 나는 산복도로 한자 뜻이

절개나 복개(覆蓋, 덮고 씌움) 

유사한 단어인  알았다.


알고 보니 사람의 배, 복부(腹部) 복 자.

 허리를 깎아 돌려 길을 만들고 

마을이 만들어지니 산복도로.


그의 첨언.

"전국에 산복도로가 여기뿐이겠습니까?

하지만 가장 길이가 긴 삶의 터전이죠.

두 번째는 계단 문화입니다.

비탈길이니 계단이 많고

물 지게 지고 오르던 애환이

계단과 함께 기억됩니다."


방송에서 많이 소개된 모노레일이 고장 났다고 해서

168계단을 힘겹게 오르는데

자체 개발한 명란 캐릭터가 반긴다.


전문가 입장에서 단언컨대

부산의 수많은 공공 캐릭터  중에 가장 잘 만들었다!



6. '명란(明卵)'을 상품으로

계단 오르막 2/3 지점

점점 숨이 가빠질 때쯤,

계단 오른편에 명란과 어묵을 파는 연구소(랩)가 있고

커피숍이 있다.


명란과 명란 어묵은 맛도 괜찮았는데,

인터넷 쇼핑이나 택배 없이

이곳에서만 판다는 마케팅이 마음에 들었다.


하기사 명란, 어묵이 부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제대로 된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이 건물 루프탑에서 보는

정면의 시원한 부산항 부두 풍경과

왼편의 무수한 산복도로 마을들이

상쾌함을 준다.


또 계단 위에 올라 오른쪽으로 보면

명란 셀프 쿠킹 클래스(이야기 충전소)가 있다.

요리를 해서 야경을 함께 즐기는

이색 장소라는데,

다음에 저녁 만찬 일정으로 한 번 와야겠다.


이바구 충전소를 나와 도로를 따라

100미터쯤 올라가면

나오는 아스팔트 산복도로.


정류장에서 86번 버스를 타면

더 많은 풍경을 감상하며

서면까지 갈 수 있다고 해서 타 봤다.


바다와 비탈길 마을의

장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아직도 수많은 삶들이 공존하는 이곳은,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을,

낯선 이방인 젊은이들에게는

SNS 용 시원한 풍경을,

나 같은 어정쩡한 중년에게는  

애틋한 이바구(이야기) '꺼리'를 만들어 준다.


공간이 주는 감동과 힘이 느껴졌다.


서울은 달동네.

부산은 산복도로.

서민의 삶이 곧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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