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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Jul 11. 2022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101. 누이


큰아들, 장남, 맏상주라는 이름의 

아들로서의 대접과 무게에 어울리지 않게

나에겐 위로 누나가 있다.


누나는 어릴 적 소심한 나를 이끄는 리더였다.


자기 몸보다 두배는 큰 

아버지 화물 자전거를 타고 가다 

개천 위로 떨어지질 않나

내가 밤 따달라고 하니 

무턱대고 그걸 따러 나무에 올랐다가

다리가 찢어지기도 했다.

한마디로 에너지가 넘쳤다.


동네 남자아이들도 작대기로 때려도

그럼에도 동네 남자 또래들에게 인정받은 것은

또래 중에 공부를 제일 잘했기 때문이다.


누나는 학술상으로 이름 붙여진 우등상을 도맡았다.

나는 누나가 늘 자랑스러웠지만

나는 2학년 때를 제외하고는 

누나처럼 우등상 대열에 끼지 못했다.

공부 잘하는 누나는 인기가 만점이었다.

집안의 자랑이기도 했다.


그때 공부 잘하는 아무개라는 인식이 퍼져서

남중 남고 때도 선배들에게 

"누구 동생이네, 열외!"로

남들보다 덜 맞았다.


나중에 어머니 돌아가시고 

누나가 과거 이야기하는데

결정적으로 공부를 포기한 사연을 털어놨다.


어느 날 선생이 아이들과 연필 한 묶음을 들고

집으로 찾아왔단다.


불우이웃이라고.


우리 집은 가난했으되 

남들과 사는 형편이 대개 비슷비슷했는데

아마 누나의 옷 입는 행색이 

그렇게 오해를 불렀나 보다.


그때 충격을 받은 누나는 

학교 선생님이란 꿈을 포기하고

중고등학교 때 보통 누나로 살았다.


나이 오십 대 중반에 박사를 도전하고

꽃 전문가로 스튜디오를 만든 

또는 세상을 떠도는 동생 대신

어머니를 모신,

공장다니며 내 대학 등록금을 내어 준

고마운 누이가 어제 생일 꽃을 보내왔다.

누나가 시골집 마당에 알뜰살뜰 가꾸던

그 꽃들 덕에 나는 아직도 꽃이 너무 좋다.


꽃 같은 누이

건강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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