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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Aug 13.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11. 제비도 슬피 우는 강남, 난징 2016


남경(南京), 난징을 내가 가고자

마음먹은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난징대학살 기념관 때문이다.


장춘과 셴양의 만주사변기념관을 보고

근대사 아픈 중국 역사를

더 공부해 보고 싶었다.


난징공항에 내리니 4월의 봄기운이 완연했다.

우리 어릴 적 초가집 제비가 귀향한

강남이 여기란 말인가.


다음날 일찍 채비를 서둘렀다.

중국 대개의 일과는

모두 8시 반에 시작되기 때문에

나 같은 얼리버드 스타일은 다니기 편하다.


과연 도착한 대학살 기념관은

벌써 인산인해.


붉은색 모자와 깃발을 든

어르신들 단체관광객이 줄을 서고 있다.


여기서도 들어갈 때 짐 검사를 한다.

테러에 노출된 미국이나 매한가지다.


입구에서 흰 국화 한 송이를 팔길래 샀다.


정식 이름은

중국침략일본군난징대학살조난동포기념관

(侵华日军南京大屠杀遇难同胞纪念馆).


용인신문에 그렸던 대학살기념관 이미지들

그러나 입구에서부터

내가 생각했던 선입견은 부서졌다.

만주사변의 그 경직되고

분노 유발의 분위기가 아닌


침잠하고 조용하고

슬피 구석 앉아 조용히 흐느끼는 듯한,

최대로 절제된 듯한

조형과 디자인이었다.


아... 너무 기가 막히고 슬프면

이렇게 미니멀하게,

정제되게 추모하게 되는구나.


가슴 속 깊은 곳부터 슬픔이 차 올랐다.


피해자 30만 명. 아직도 진실을 위해 싸워야 하는 현실. 사진 출처:기념관 홈페이지 http://www.19371213.com.cn


난징 대학살(南京大屠杀,Nanking Massacre)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2월까지 6주간에 걸쳐 이루어진 학살이자

1939년 4월에는 1644 부대의

생체실험까지 자행된 곳.

아시아의 홀로코스트.


사진 출처:기념관 홈페이지 http://www.19371213.com.cn

채 20분이 걸리지 않는

어둡고 간결한 전시관을 나오니

먹먹한데,

바깥 웅장한 조형물에는

'평화(和平)'라는 중국 대체 단어 '화평'이란 글자가 크게 눈에 들어온다.


사진 출처:기념관 홈페이지 http://www.19371213.com.cn


나무 관세음보살.

이제라도 모두 평안히 잠드시길.


대학살기념관 다음에 찾은 곳은

역시 학살과 기억의 공간,

위화타이열사기념관(雨花台烈士纪念馆).

공산당원 10만 명을 도륙했던

국민당의 처형장 자리이다.


난징은 슬프기 그지없다.

국민당과 공산당으로 나누어져

서로 비극적으로 죽고 죽이던 공간이었다.


사회주의 정권은 그 곳을

역사교육의 장으로 만들었다.

중국 대부분의 기념공원이 그러하듯 웅장하다.

물과 석조조형물, 그리고 숲.


전형적이되 중국인이라면

가슴에 불이 붙을 것만 같다.

사진 출처: 위화타이공원 홈페이지 캡쳐 http://www.travel-yuhuatai.com

벌써 수학여행 단체관람 청소년들이

탑 앞에서 목례를 하고 있다.


이념의 굴레에 희생이겠지만

근대사 중국은 학살의 공간이었다.

공산당도 국민당도 모두 사람을 많이 죽였다.

사진 출처: 위화타이공원 홈페이지 캡쳐 http://www.travel-yuhuatai.com


열강의 침략에 대륙이 침몰하고

혼돈의 공간은 그렇게 멀쩡한

국민들을 저세상으로 보냈다.


열강과 서구와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아직도

중국인들과 중국 미디어에 남아있는

이유라 할 것이다.


돌아오는 길 입구에 노년의 남녀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다.


학살의 기억과 봄날의 춤이라니.

사람의 생명은 그래서 끈질기고

아플수록 웃는 법.


애잔하면서도 미소가 나오는

현대 중국의 이미지가

바로 난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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