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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Aug 27.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21. 못난이 만화가 삼 형제, 2002


같은 길 동행길에 여럿이면 편하다.

길 떠나는 세 사람 중에도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옛말도 있다.


내게는 사회에서 만난 만화가 동생

둘이 있다.


얼마나 세 명 다 성격이 도드라졌는지

단톡방 혹은, 오프에서 만나기만 하면

말싸움에 유치하기 그지없다.

동생 둘이 합작한 학습만화

a는 학과 1년 후배로

같은 학보사 만화 기자 출신이다.

성격은 쿨병 오졌는데

실상 마음속에 열정을 숨기고 산다.


서울깍쟁이 출신인데

수더분했다가

냉정했다가 냉온탕을 오간다.

만화가로서의 열정과

서초동 법률가들의 비정함을 모두 갖고 있는

아수라 백작 같다.


나는 힘들어도 만화가로 가자고 했던 주의고

이 친구는 라면 먹고 못살겠다고

서울 변호사 사무실 사무원으로 갔다.

그래서 못다 한 만화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2002년 이후 큰 형이 만화에 목숨 거는 걸 보고

갑자기 머리 깎고 만화에 뛰어들었다.

대기업 연봉을 상회하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골방에서 펜과 잉크로 씨름하는 결단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때쯤 만난 동생이 b이다.

강원도 출신 이 친구는 내가 일본에서

오마이뉴스 독자 뉴스 연재할 때 댓글로

소통했던 친구다.


성격이 느긋하고 시니컬한데

착한 성정을 숨기려 위악적으로 말하는 버릇이 있다.

술 담배를 안 하고

만화 자체를 좋아하는 게으른 작가이다.


암튼 내가 2002년 귀국했을 때,

세 사람은 도원결의 흉내 내며 뭉쳤다.


두 사람은 학습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당시엔 아마추어가 만화로 먹고살려면

학습만화나 해야 현금이 들어오던 시절이었다.

나는 대학 보따리 장사였고...


쩌리 삼 형제는 킬킬거리며

홍대 근처에서 잘도 놀았다.


지금 같은 웹툰 전성기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만화계 모두 궁핍의 시대였다.


처자식 먹여 살리려면 학습만화를 죽어라 해야 했는데,

두 신인은 여러 권을 냈으나 겨우겨우 풀칠할 정도였다.

큰 형이 만든 꼬꼬마 만화책

이른바 매절이라는 저작권 넘기고 목돈 받는

시스템의 희생자들이었다.


결국 그 양산체제에 지친 둘째 a는

다시 변호사 사무실로 돌아갔다.


b는 출판사도 들어갔다가

아직 학습시장에서 콘티작가로 살아남았다.


서울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 년에 한두 번 회합하는데

만나면 만화판 이야기며,


a와 내가 b에게 구질구질 살지 말고

돈 좀 더 벌어라,

부지런하게 살아라,

잔소리 총공격을 퍼붓지만

b는 지지 않고

안빈낙도의 삶을 주창한다.


세 명 다 나이 50이 넘어

장성한 자식들을 두고 있지만

마음은 아직 2000년대 초 열정은 그대로다.


그러고 보니 여행 한번

사진 한 장을 안 남겼네...


귀 밑머리 흰머리는 늘어도

열정은 살아있는

만화와 야구에 관한한 전문가를 자처하는

중년 삼 형제

언제 남도 쪽 여행이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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