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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Oct 02.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44. 취재원 경석이 형, 1992


기자 생활하다 보면

취재원과 편리도모를 위해

혹은 끈끈한  때문에 

으레 부르는 호칭이 있긴 하다.


국회의원을 선배라고 부르고

친하면 검사를 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기자 시절 그게 달갑지 않았다.

고지식했던 나는 기자와 취재원은

불가근 불가원 관계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야 형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 한 명 있다.

경석이 형.


노동운동 역사에서

그는 열사가 되었으나

내게는 아직 한위원장님,

또는 내 마음속에 ‘경석이 형’이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임을

느끼게 해 준 사람.


부천에서 지역신문 기자 하는데

어느 날 경제부로 발령 났다.

노사 즉, 상공회의소와 노동단체

모두를 커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춘의 사거리였던가 공장지대

첫 취재 차 간 허름한 건물.

지역 노동운동협의회 사무실.


언론에서 보던 카리스마 대신

털보 한경석은 의외로 부드럽고 따듯했다.

수많은 사건과 탄압의 아이콘은

이웃집 형 같이 푸근했다.


다름은 민주화운동 기록의 단편.


“편한 잠바에 벙거지 가방 하나 메고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한경석 열사는

재미있고 소탈하며 투쟁의 현장을

떠나지 않는 지도자로 평가되고 있다.

열사는 1962년 1월 28일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자가 된 열사는

1987년 당시 원방노조 위원장이었던

임동섭(현 한경석동지추모회 회장)을 만나

노동법 학습을 하며,

1988년 자신이 다니던

이미지 출처: 노동자 역사 한내. http://www.hannae.org

신광전자에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노동조합 위원장이 된다.

이때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

노동해방 한 길로 매진하였다.”



나이는 나보다 3살 위였고

덩치도 커서 듬직했다.


둘 다 애인도 없이

타향살이 외로운 총각 둘이서

자주 저녁에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형은 아마 노동운동 후배들 외에도

가끔 나같은 편한 동네 후배같은

술 친구가 필요했을지도.


당시 소주 마시다가 나눈 대화 중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대사가 있다.


“위원장님, 그래도

좋은 사장도 있지 않나요?”


“없어요! 자본가들은 다 똑같아요.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젊은 기자들 탄압받을 때

자문도 받았는데,

결국 나는 꿈을 찾아

부천을 떠나게 되었다.


그 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논산 그의 고향집이었다.

기자와 위원장이 아닌

자연인 두 사람이

넓은 논산 벌판을 걸으며

무어라 무어라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다.


그는 그때 주변에 실망도 많이 하고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다.

노모가 차려 준

따듯한 한 끼도 같이했다.


마중 나왔던 형의 모습이

결국 마지막 장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그해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앞만 보고

출세만을 위해 달렸던 내가

지나쳤던 수많은 인연들.


경석이 형.

처음 형이라고 불러요.

형이 그렇게 싫어하던

인텔리 학출들은 결국

이상한 정치인으로 변절했고

어떻게 꿈을 이루어보겠다고

연락 한번 안 한 무심한 동생은

이렇게 잘 있습니다.


형을 지극히 아끼던

논산 어머님은 만나셨죠?

거기에서는 건강하시길.


그리고 고마워요.

형은 경찰과 사회에는

강한 모습만 보였지만

내게는 약한 모습도

진짜 노동자가 무엇인지

가감없이 보여준 것 같네요.


그 때 제가

“나도 엄마도 누나도

공장노동자였어요.”라고 했던가요?


털보 형.

조만간 형 잠든 터에

소주 들고 한번 찾아 갈게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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