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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Oct 08.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50. 세 명의 말 벗들, 2021

    

친구 말고 '벗'이란 단어가 있다.

순우리말 같은데

이 말이 주는 정감이 좋다.


내게는 편하게 전화하는

세 명의 사회에서 만난 벗들이 있다.

그 벗들을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1. 코리아 마블을 꿈꾸었던 박 선생님

내가 박 선생을 만난 건

2000년대 중반 김해에서였다.


지역 만화행사였는데,

왕년 60년대 유명한 만화가는

연로했으되 꼬장꼬장해 보였다.


형제 만화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그분은

대학교수도 만화연구도

나보다 한참 선배였으며

나이도 부모님 연배셨다.  

    

중앙 메인스트림이 아닌 나는

그 당시 별로 알려지지 않은 만화과 선생이었고

그분을 일 년에 한두 번 행사에서

서로 봐도 인사만 할 뿐

데면데면했었다.      


본격적으로 친하게 된 건

만화사 관련 저술로

인터뷰하고 나서부터였다.


선생은 나를

충무로 다방으로 오라고 하셨다.


쌍화차를 앞에 두고

우리는 만화사에 대해

정담을 나누었다.      


만화 연구자가 소수이다 보니

동지적 연대감도 생겼다.


취재 중 그의 인생역정에 흥미가 생겼다.

만주에서 태어난 그는 전쟁 전후 부모를 잃고

중학생 때 피난지 부산에서

고학생으로 만화를 접했다.


그가 어릴 적 만화를 꿈꾸었던 대학생 때 다시 부산에서 찍은 사진. 나는 그를 50년 만에 다시 그곳으로 데려가 사진을 찍었다.


대학생 때부터 만화가,

만화출판 경영자로 나섰으며,

<여학생> 잡지도 그의 작품이다.

     

가히 한국의 마블을 꿈꾸었을 정도로

스토리 작가, 기획자,매니지먼트 등

다양한 실험을 거쳤다.


게다가 만화 판에서 안 해 본 것이 없다.

작가, 발행인, 협회 회장, 만화학원,

대학교수, 연구자까지.

    

술·담배를 거의 하지 않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어린 후배에게도 절대 반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겸손함,

그리고 지칠줄 모르는 탐구 정신.


배울게 많아     

그때부터 나이를 떠나

언제든 서로 전화로

연구자 입장에서 정보를 나눈다.


같이 가는 길에 나이는 상관없다.     


2. 눈이 커서 슬픈 들사슴 친구          

90년대 말.

서울 모 신문사 문화센터에

후배가 나를 불렀다.


여러 가지 앞날에 대한 불안과

번민이 많은 시기였다.  

    

후배는 그 자리에서

일본인 한 사람을 소개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일본 사람.

머리숱이 없고 수염이 많은

동남아 마피아 같은 생김새인데,

부드럽고 매너 있는 말투와 행동,

그리고 큰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다.

      

일본 이름을 우리말로 하면

들사슴.

실제로 들에 사슴을 풀어 놓은

나라(奈良)가 본적(本籍)이다.


같은 뱀띠 동갑내기란 사실에

금세 친구가 되었다.

술자리에서 필담을 나누며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00 대학 국제교류과

유학생 담당이다.

혹시 유학 올 생각 있으면 돕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 일을 한 건데

마지막 말에 감동을 받았다.  

    

“윤상의 인생에 감히 간섭하자면,

나는 당신이 새로운 도전을 한다면,

열심히 응원하겠다.”     


이래저래 이런저런 사정 끝에

나는 유학을 결심했다.


적지 않은 30 대 중반에

IMF 혹독한 시기였지만

좌고우면 하지 않고

돌진하는 성격 탓에 일사천리로

행동에 옮겼다.

     

일본에 도착하던 날

가을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생애 최초로 외국을 도착한 날이

유학 첫날이었다.

아직도  두려움

기대감 그리고 설렘이 교차하는

98년 9월 비 오는

간사이 공항이 잊혀지지 않는다.

     

일주일 뒤 그는 나를 데리고

이자카야에 데려갔다.

그는 직장인 나는 학생.

동갑이지만  우리 처지는

하늘과 땅이었다.


더구나 그는 진보적 교직원으로

미디어를 장식하는 유명인이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고

그와 나는 중년이 되었고

평지풍파를 같이 겪었다.


그는 퇴직 후

진보적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그에게 개인적 불행도 찾아왔지만

같이 슬픔을 나누었다.

   

오랜만에 2010년쯤

비와코 호수 근처에서 만나

우리들의 루틴,

생맥주와 말보로 담배를 함께 나누었다.

 

그가 쓴 <대 암흑시대의 (일본) 대학> 책.

코로나가 사라지면

근처 오코노미야키 집에서 만나

옛날이야기하며

밤늦게 통음(痛飮)하고 싶다.      


3. 부산의 K선배

부산  작은 봉사 모임에

일 년 한두 번 운영위원회가 있었다.


거기서 만난 연극, 출판,

문화기획자 K선배를 만났다.

한 살 위인데

그야말로 오지라퍼, 마당발이었다.


부산에서 문화 쪽

최고의 행동가이기도 했다.

     

그와 개인적으로 막걸리를 나누면

서로 기분 좋은 것이

아이디어 뱅크들끼리

머릿속 수많은 기획들을 나누고 토론한다.

     

만화에도 관심이 많아 만화책을 내기도 했고

특강, 강좌, 행사에 나를 초대하면

반대로 나는 문화기획자를

교내 세미나에 초대하고 그랬다.

   

그런데 그 바쁜 선배가

지난 설 즈음 쓰러졌다.

코로나에 중환자실은  

면회가 금지되었다.


나로서는 빨리

쾌유하기만을 빌 뿐이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두 달 만에 기적적으로 일어나

지금은 재활치료 중이다.

     

얼마 전엔 많이 나아진 목소리로

올해 안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희망 섞인 통화를 했다.   

  

내가 이 선배와 교유하며

최고라고 생각하는 에피소드 하나.


그가 첫 시집을 냈을 때,    

그동안 자기와 관계했던

국악, 가요, 시인, 연주자들을 불러 모아

소규모 콘서트를 개최했다.

기획자 다운 멋진 이벤트였다.  


그가 빨리 퇴원하여

나와 같이 금정산을 같이 걷게 되기를,

금정산 그 많은 절들을 지나치다

잠시 서서 빌고 또 비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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