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추억 여행기
52. 나도 가해자였다, 1988
군대 꿈을 50 초반까지 꾸었다.
대개의 한국 남자처럼
내게도 군대는
지독한 악몽이었다.
24살 좀 늦게 간 군대는
나이가 걸림돌이 되었다.
선임하사는 나보다 어려서
더 나를 갈구었고
선임들 비아냥에
자존심이 더 상했다.
뭔가 20살 전후 뭘 모를 때 오는
친구들이 적응이 빨랐다.
80년대 군대는
아침저녁으로 매타작이었다.
전방에서 소지하는
총과 수류탄으로 사고 치거나
북으로 도망가는 사고병들이
그래서 한때는 이해도 됐다.
야삽 몽둥이 등 도구가 금지되어
주로 주먹 군화로
멍이 잘 안 드는 목. 정강이.
허벅지 등을 골라 때렸다.
닥치는대로 성질을 못 이겨 패는
고참이 가장 무섭다.
그들은 세숫대야도 연탄재도
보이는 대로 던진다.
5분 만에 두들겨 패고
화가 풀리는 고참도 있고
때리지 않고 엄동설한에
팬티만 입혀 놓고 잔소리하던
선임들도 있었다.
내 동기는 적응 힘들어하던
어린 친구였는데, 고문관으로 찍혀
맞다가 맞다가 사고 칠 수 있다며
후방으로 전출 보냈다.
대학 생활과 연애를 하고 오니
더 적응이 더뎠는가
나도 이래저래 실수가 많아
많이 맞았다.
폭력의 악순환 속에
나 또한 괴물이 되어갔다.
더구나 자라오면서 부모 학교에서
거의 맞지 않고 자란 범생이는
맞을수록 사디즘 마조히즘
그런 게 생겼는가
안 맞으면 잠도 안 오고 그랬다.
공포의 상병 식기 당번은
누구나 맡고 싶은 군기반장 겸
먹거리 조달 짬이다.
나도 식기 당번이 되자
무서운 선임 역할을 했다.
당연히 하는 거라고,
체계라서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자위했지만
안 때리는 고참도 있었다.
그러니 변명치고는 궁색하다.
내가 우리들의 일상화된
폭력을 멈춘 건
야외훈련 때였다.
병장 1호봉 때 받은
후견인 이등병이
실수해서 때렸는데,
좀 문제가 생겼다.
순간 아, 인생 끝났구나 생각했다.
다행히 맞은 친구가
아무 일없다는 듯 일어서고
해프닝으로 끝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 꼴뚜기, 망둥이 노릇을 그만두었다.
내 인생 지우고 싶은 흑역사이다.
영화 DP를 봤다.
군대 드라마 영화 예능은
쳐다도 안 보는데,
이 영화를 보며 마음속으로 울고
용서를 빌었다.
에필로그.
2015년 26년 만에
나를 사람으로 대해주고
믿음으로 지켜 준
존경하던 고참 이상병을
서울 종로에서 만났다.
이등병 시절 내 후견인으로
나이도 나보다 어린데
나를 정말 정성으로 감싸주고
적응하도록 도왔다.
역시 그 성정대로
가난하지만 착한
목사님이 되어 있었다.
그런 사랑을 받았으되
나는 후배들을 때렸으니
죽고나면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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