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추억 여행기
54. 강사 전국일주, 2002
대학강사 10년,
20년 하신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시간강사 2년을
말 그대로 빡세게 했다.
일본에서 들어오니
누구 하나 강사 자리 주는 데가 없었다.
용케 대구 전문대학에서
강의 자리 하나를 주었고
이후 이래저래 소개를 받아
여러 군데를 다녔다.
전국일주를 했다.
일요일 밤 11시 40분
호남선 무궁화를 탄다.
시끄럽고 어수선한 기차는
새벽으로 갈수록
조용하다.
자다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쳐
잠도 덜 깬 상태에서
허둥지둥도 많이 했다.
새벽 4시쯤 순천에 도착한다.
그때는 pc방도 없어서 갈 곳도 없다.
5시 반 사우나 문 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샤워 후 한숨 잔다.
8시에 일어나 해장국을 먹고
학교 가서 8시간 강의를 한다.
다시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부산에 간다.
이번엔 용돈벌이 개인과외이다.
과외하고 그 집에서 학생과 같이 자고
새벽에 다시 대구로 간다.
대구 전문대는 두 과목인데,
강사료가 고작 14,000원이다.
그래도 이런 자리 잘 없다.
점심은 대충 학생식당에서 때우고
오후에는 마음이 급해지는 게
광주로 가야 한다.
광주에 도착하면 밤 12시.
찜질방을 찾는다.
광주 웬만한 찜질방은 다 순례했다.
그나마 봉선동 찜질방이 그나마 나았다.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청하기 힘들다.
광주에서는 또 두 과목하고
이제는 대전으로 날아간다.
대전에서 수업을 마치고
서울 집에 돌아오면 몸은 시체 같다.
서울 아무개 전문대학에서 연락이 왔다.
부리나케 갔더니
시급 8,000원이란다.
교통비 찜질방 값 안 드니
이익 아니냐고
학과장이 웃던데
차마 그 돈에는 못하겠어서
정중히 사양했다.
그 이후 서울, 천안, 전국 방방곡곡
특강, 센터, 교육원 일 년 내내 쉬지 않았다.
교수 눈치 보고
교수 강사 차별하는
학생들 가르치고
게다가 공부도 해야 하는
이 시대 시스템의 희생자들.
지금은 개구리가 되어
올챙이 적 생각도 못하고
전국의 5만 명 강사 입장도
남 일처럼 되어 버렸지만,
아직도 전국을 떠도는
누군가의 아빠 엄마
누군가의 아들 딸들에게
고학력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건투를 빌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