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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Oct 11.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54. 강사 전국일주, 2002


대학강사 10년, 

20년 하신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시간강사 2년을 

말 그대로 빡세게 했다.


일본에서 들어오니 

누구 하나 강사 자리 주는 데가 없었다.


용케 대구 전문대학에서 

강의 자리 하나를 주었고

이후 이래저래 소개를 받아 

여러 군데를 다녔다.


전국일주를 했다.


일요일 밤 11시 40분 

호남선 무궁화를 탄다.

시끄럽고 어수선한 기차는 

새벽으로 갈수록

조용하다.


자다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쳐 

잠도 덜 깬 상태에서 

허둥지둥도 많이 했다.


새벽 4시쯤 순천에 도착한다.

그때는 pc방도 없어서 갈 곳도 없다.


5시 반 사우나 문 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샤워 후 한숨 잔다.

8시에 일어나 해장국을 먹고

학교 가서 8시간 강의를 한다.


다시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부산에 간다.

이번엔 용돈벌이 개인과외이다.

과외하고 그 집에서 학생과 같이 자고

새벽에 다시 대구로 간다.


대구 전문대는 두 과목인데,

강사료가 고작 14,000원이다.

그래도 이런 자리 잘 없다.

2002년 전문대 강사 시절 방학 때 일본 애니메이션페스티벌 인솔하고 갈 때 페리호 선상에서.


점심은 대충 학생식당에서 때우고

오후에는 마음이 급해지는 게

광주로 가야 한다.


광주에 도착하면 밤 12시.

찜질방을 찾는다.

광주 웬만한 찜질방은 다 순례했다.


그나마 봉선동 찜질방이 그나마 나았다.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청하기 힘들다.


광주에서는 또 두 과목하고

이제는 대전으로 날아간다.


대전에서 수업을 마치고 

서울 집에 돌아오면 몸은 시체 같다.


서울 아무개 전문대학에서 연락이 왔다.

부리나케 갔더니 

시급 8,000원이란다.

교통비 찜질방 값 안 드니 

이익 아니냐고

학과장이 웃던데

차마 그 돈에는 못하겠어서 

정중히 사양했다.


그 이후 서울, 천안, 전국 방방곡곡

특강, 센터, 교육원 일 년 내내 쉬지 않았다.


교수 눈치 보고 

교수 강사 차별하는 

학생들 가르치고

게다가 공부도 해야 하는

이 시대 시스템의 희생자들.


지금은 개구리가 되어 

올챙이 적 생각도 못하고

전국의 5만 명 강사 입장도 

남 일처럼 되어 버렸지만,

아직도 전국을 떠도는 

누군가의 아빠 엄마

누군가의 아들 딸들에게

고학력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건투를 빌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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