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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Oct 15.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59. 청춘가, 1985


대학생활의 꽃은 동아리이다.

당시엔 서클이라고 불렀는데

앞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시사만화 꿈을 위해

입학하자마자 학보사에 들어갔다.


취재 사진 만화 기자 중

당연히 만화 기자로 입사했다.


사실 학보사 방송국

영자신문사는  지금도 그러하듯

동아리라기보다는

학교 부속기관에 가까웠다.


학교에서 운영비와

장학금을 주기 때문이다.

원고료 취재비도 나왔다.


85년은 학원자율화 방침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시끄러웠다.

학도호국단이 폐지되고

총학생회가 부활해

학교는 최루탄과 함께

활기가 돌았다.


동기는 남자 셋

여자 셋이었는데

1년간 수습기간 동안

나름 합도 잘 맞았다.


신문사 구성원들은

의기 충만해

전국에서도 신문 잘 만든다는

소리를 들었다.


학과가 적성에 안 맞아서

더욱 학보사에 올인했던 것도 같다.

주간교수는 당시 사회교육과

교수님이었는데 상당히 샤프했다.


젊은 주간교수와

패기만만한 기자들은

교내외 취재를 물론

편집, 교열도 모두 해야 했다. 

지역 일간지에 직접 가서

교열도 같이 봤다.


당시엔 납활자로 찍는

활판인쇄로 우리가 대장이라 불리는

교정지에 빨간 볼펜으로 표시하면

직원분들이 납 활자 하나하나를 골라

배열했다.


윤전기를 막 빠져나온 신문의

잉크 냄새 기억이

아직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신문이 학교에 개선장군처럼

배달되면 모두 펼쳐 들고

자기 기사를 찾았다.


평가회의를 하고 당연히

뒤풀이를 한다.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당시엔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는가

쓰디쓴 소주를 빈 속에 많이 부었다.


행사를 하면 사가(社歌)로

산울림의 청춘을 늘 불렀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아마도 독재정권 어둡고 긴 터널에서

가장 적절한 선곡이었겠으나

분위기는 노랫말처럼 구슬펐다.


586들의 전성기답게

시끄럽지만 하늘 높이

세상에 대해 소리치던 날들이다.


그 영민하고 잘생긴

인기 최고의 주간교수님이

몇 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최근에 들었다.


그분의 주전공

막스 베버 열강이 생각났다.

덕분에 젊은 날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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