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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Nov 01.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70. 향수를 자극하는 그윽한 냄새, 1972


고향사람과 이야기하다

어릴 적 마을에 진동하는 

냄새들에 대해 감각이 발동했다.


시골은 대개 일상이 비슷해서 

같이 만들고 짓기 때문에 

똑같은 냄새가 어우러지기 마련이다.

더구나 삼면이 야산으로 뒤덮인 

우리 동네는 말할 것도 없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대개 시루떡을 한다.

이른바 땡스기빙, 추수감사 떡이다.


옹기 시루에 밀가루로 이음새를 하얗게 두르고

가마솥 장작에 불이 붙으면,

햅쌀과 팥의 고소한 냄새가 동리를 감싼다.


고구마나 호박도 넣거나 밑에 깔아서

그 냄새는 더욱 침샘을 자극한다. 

땔나무 타는 냄새와 함께 

차가운 초겨울 바람에 낮게 깔린다. 


어디 집은 멥쌀로 

어디 집은 찹쌀, 또는 콩도 들어가 있다.

아마 보름 정도는 

각자 집의 아이들이 돌리는 떡으로

파티를 해야 할 지경이다. 

산골이라 겨우내 눈이 많이 온다. 


겨울이 다가오면 메주를 쑨다.

메주콩 특유의 진하고 구수한 향이 마을을 덮는다.

메주를 쑤어 식힌 다음,

아이들도 손을 거들어

네모랗게 모양을 만들고

짚으로 새끼를 꼬아 처마 밑에 매단다.

산촌의 겨울의 추위와 눈이 얼었다가 녹았다를 반복하면

곰팡이 냄새와 함께 숙성되어 간다.


이듬해 초에는 

엿 고는 냄새가 이 집 저 집에서 나곤 한다.


대개 설을 앞두고 만드는데

모든 집이 만드는 것은 아니라서

우리 집이 오랜만에 엿을 만들면

빨리 맛보고 싶어서 나는 바둑이와

눈 내리는 동네 골목을 마구 뛰어다니곤 했다.


동네잔치와 명절엔 

향냄새와 잡채, 전 같은 기름 냄새,

겨우내 동네 중앙 터엔 

정미소에서 가져온 

왕겨 더미에서 타는 냄새,

그리고 겨울 저녁만 되면 소죽 냄새와 

잔솔가지 연기 향도 

마을을 휘감는다.


그리운 향기와 냄새의 향수(鄕愁)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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