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을 수 없는...
“내가 어련히 끌까 봐! 그새 껐어!!!”
왕방울만 한 커다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가 화를 벌컥 낸다.
“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순간 당황한 남편은 장모의 불 같은 목소리에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다.
“화가 안 나나! 자네가 나를 무시하는데!”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왜 무시해요... 냄비가 탈 것 같아 끈 것뿐이에요, 화내지 마세요~ 어머니.”
“됐어!”
엄마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것만 봐도 안다.
“미역국이 뭐라고… 냄비가 타든 말든 참견하지 말지.”
풀이 잔뜩 죽어 있는 남편에게 넌지시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나는 화재가 날까 봐 그랬지. 다른 뜻은 없어.”
“알아. 당신 마음.”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늘 당황스럽다.
나는 엄마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엄마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벽을 보고 누워 씩씩거리고 있었다.
“니들이 내가 빈 몸으로 왔다고 나를 무시해!”
엄마의 레퍼토리가 또 시작이다.
툭하면 듣는 말인데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
정말 무시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자꾸 무시한다고 하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엄마의 괜한 자격지심인 줄 알면서도 자식으로서 똑같은, 그것도 좋지도 않은 이야기를 자꾸 듣는다는 것이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끝까지 참았어야 했는데... 참았어야 했는데...
그만 나도 그걸 이기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 우리가 언제 엄마를 무시했다고 자꾸 그래!”
엄마도 이에 질세라 벌떡 일어나 앉아 소리를 질렀다.
“니들이 이렇게 무시하잖아!”
정말 무시한 적 없는데...
두 사람의 목소리가 방을 집어삼켜 버릴 듯이 점점 거칠어졌다.
“화재가 날까 봐 껐다잖아!”
누구를 위한 말싸움인지 밑도 끝도 없이 둘이서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
:
“내가 어련히 끌까 봐!”
“엄마가 잠들어서 미역국이 다 졸고 있는데 그럼 어떡해!”
“내가 언제 잠잤다고 그래! 엠 한 사람 잡지 마!”
“그래, 알았어! 알았어!”
:
:
엄마와 나는 감정이 격해질 대로 격해졌다.
얼른 감정을 추스르고 그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엄마가 뭐라 뭐라 하는데 듣지도 않고 방문을 쾅! 닫고 나와 버렸다.
방 안에 앉자 눈물이 났다.
‘어휴~힘들어… 무시한 적 없는데…’
‘정말 힘들다… 이 상황을 비껴갈 수만 있다면 정말 그만두고 싶다…’
엄마랑 다툼이 벌어지는 날에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에 몇 날 며칠 깊은 우울감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큰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엄마 좀 며칠만 모시고 가면 안 될까? 숨 좀 쉬게...”
그동안 힘들 때마다 오빠들이나 언니에게 전화해서 엄마 흉을 잔뜩 보고 나면 또 견딜만하고 했는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엄마와 잠시나마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에 처음으로 큰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다.
“어, 그래. 알았어! 미안하다... 곧 갈게!”
큰오빠는 금세 후루룩 달려왔다.
큰오빠는 미안한 마음에 내 눈도 보지 못한 채 엄마를 모시고 안개처럼 사라졌다.
‘왜 내가 모셔야 할까??? 오빠들도 있고 언니도 있는데...’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오빠들과 언니에게 서운한 감정들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큰오빠는 마치 죄인인 양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그냥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하지 못했다.
엄마가 없는 빈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안 모시겠다는 말이 아니라 단 며칠만이라도 엄마에게서 벗어나 숨 좀 쉬고 싶었다.
단 며칠만이라도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 마음 편할 것 같았다.
엄마가 없으니 편하게 숨을 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의 빈방을 바라보자 금세 후회가 밀려왔다.
큰오빠 집에 가서 축 처진 어깨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 엄마가 생각이 났다.
나도 모르는 낯선 감정이 훅 올라왔다.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속으로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갓난아이를 친정 부모님께 맡기고 놀러 갔을 때의 감정, 그 감정 그대로 뭔가 불편하고 찝찝했다.
‘좀 더 참을 걸.’
심장이 뚝딱거리기 시작했다.
쿵쾅거리며 마구 뛰는 심장 소리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개운치 못하고 찝찝하고 답답하고 불편하고...
아무래도 엄마를 다시 모시고 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모시러 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퇴근해 온 남편을 앞장 세워 곧바로 큰오빠 네로 달려갔다.
역시 엄마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거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우리 부부를 보자마자 마치 잃어버렸던 부모를 만난 듯 환하게 웃어주는 엄마..
나는 아무 일 없었던 듯 툭 내뱉었다.
“엄마, 집에 가요!”
엄마는 당당한 목소리로 힘차게 외쳤다.
“그래, 우리 집으로 가자!”
힘없는 다리에 힘을 잔뜩 불어넣으며 엄마는 휠체어에 앉았다.
엄마를 다시 모시고 돌아오는 차 안은 제자리를 찾은 듯 평온했다.
뒷좌석에 앉은 엄마에게 슬며시 말을 건넸다.
“엄마, 미안해요!”
“아니야, 내가 미안하지.”
“엄마 우리 싸우지 말자!”
“그래.”
그날 저녁 침대에 누워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엄마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다시금 마음속 깊이 새겨 넣었다.
‘그래, 이제 엄마는 내 딸이다.”
‘내 딸이라면 어떤 경우에라도 책임지잖아.’
‘나 힘들다고 내 딸을 다른 사람한테 맡기지는 않잖아.’
‘내 딸을 돌보면서 다른 형제들에게 생색은 왜 내고 그래!”
‘누구도 원망할 것 없고, 그냥 내게 주어진 책임이야.’
‘딸 하나밖에 없는 내게 하나님께서 딸 하나 더 주신 거야.’
‘그래, 이제 엄마는 내 딸이야!’
‘내 딸 ㅎㅎㅎ’
별 하나 별 둘 세듯이 깜깜한 천장을 바라보며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깊고 고요한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 표지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