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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고백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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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재 Nov 04. 2024

니들, 나 빼고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알면서도

지금 생각해 봐도 남편에게 나는 정말 염치가 없었다. 없는 형편에 내 가난한 친정 부모를 모시는 일이 남편에게는 무지 힘들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내가 내 부모를 모시는 일이 당연하듯이 남편 또한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거라는 착각 아닌 착각을 했다. 물론 남편은 친정 부모 모시는 일에 대해 늘 감사하게 여겼다. “가난한 막내가 부모님을 모실 수 있는 것은 축복이야! 부모님이 가난하니 우리에게 오신 거지, 만약에 부모님이 부자였다면 우리에게 올 기회도 없었을 거야!”라고 하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어떻게 보면 남편에게 친정 부모는 피 하나 섞이지 않은 남일뿐인데, 9평 되는 좁은 집에서 아무 군소리 없이 감사함으로 함께 살아준 것,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맙고 고맙다.


그 뒤로 조금 넓은 평수로 이사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 공간에서 눈 밝고, 귀 밝은 장모랑 함께 사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거다(이사를 하는 동안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떤 때는 멀리서도 우리 부부가 하는 소리에 대답을 하기도 하고, 우리 부부 둘이서 거실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낼라치면 누워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우리 부부 옆에 와 앉아 있곤 했다.


남편에게 너무 미안했다.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고도 싶을 텐데... 좁은 공간에서 그런 시간을 갖는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미안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한 끝에 시간 나는 대로 남편과 밖에서 데이트를 즐기기로 했다. 엄마 몰래. 엄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부부 둘만의 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엄마 몰래 밖에서 만나 손잡고 산책을 즐기기도 하고, 맛집을 찾아가 맛난 음식을 먹기도 했다. 마침 강동구에 살 때라 남양주에 있는 정약용 생가는 우리 부부의 단골 장소였다. 남한강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늘 그곳을 찾아가 머리를 식히고 돌아오곤 했다. 눈이 오는 날에는 테이크아웃한 커피 두 잔을 들고 차 안에서 남한강을 바라보며 잔잔한 음악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니면 예술의 전당에 가서 분수대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산책로를 걷다가 돌아올 때도 많았다. 또 가까운 한강 공원에 나가 잔잔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마음속 무거운 짐들을 강물에 맡기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시끌벅적한 이태원의 거리를 거닐다 유명한 피자집에 가 피자를 먹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 서로 아무 말하지 않는 날도 많았지만 그냥 편안했다. 

집에 있을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하지 않으면 우리 부부가 먼저 지치고 쓰러질 것 같았다. 엄마 없이, 아이 없이 오로지 단둘이 데이트를 즐긴다는 것이 내겐 너무 기쁘고 행복한 일이었다. 그냥 철없는 아가씨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너무 좋았다. 아마도 남편 또한 총각 시절로 돌아간 듯하지 않았을까? ㅋ. 남편을 핑계 삼아 내가 더 즐겼던 것은 아닐지?... 잠시나마 육아에서 벗어난 듯한 그런 평안함, 고요함, 안락함... 


엄마 몰래 둘이 데이트를 즐기고 온 날, 우리 부부는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들키지 않기 위해 머리를 짜 내었다. 가령,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달리 하는 것이다. 어떤 날은 남편 먼저, 어떤 날은 내가 먼저 들어가서 시치미 뚝 떼고 같이 놀다 온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일명 시간 차를 두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날은 그걸 까먹고 그만 함께 들어가는 날이 발생하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눈치 빠른 우리 엄마,

“니들, 나 빼고 어디들 갔다 오는 거야?” 하고 묻는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나도 남편도 입벙긋도 하지 않았는데 눈치로 때리는 우리 엄마, 무섭다 ㄷㄷㄷ.

빛의 속도만큼은 아니지만 그것과 견주어도 괜찮을 만큼 엄청 빠르다 ㅎ.

“어디 갔다 오긴? 나는 친구들 만나고, 남편은 회사에서 오는 길이지!”

“그래~. 근데 어떻게 같이 들어와?”

“요 앞에서 만났어!”

“그래~.”

수긍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애매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엄마. 그러나 의심의 눈빛을 감추지 못하는 엄마의 서운한 눈초리. 하지만 이내 체념한 듯 마침표를 찍는 엄마의 심드렁한 목소리.


“휴우~ 깜짝 놀랐네!”

“엄마가 눈치를 챈 것 같아! 어쩌지?”

“그러게 ㅠㅠㅠ, 이번 주 토요일 날 어머니 모시고 맛난 점심 사드리자!”

“그래!”

침대에 누워 우리 부부는 이 상황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 난감해했다.  마치 죽을죄를 지은 듯 찝찝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분명 엄마는 우리가 둘이서 시간을 보내고 온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냥 모르는 척, 서운한 감정을 접어 버리는 엄마, 그게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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