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못된 딸...
“나, 파마하러 미용실 가야 하는데……”
휠체어를 밀면서 거실에 나온 엄마가 내게 넌즈시 묻는다.
늘 당당하던 엄마의 우렁찬 목소리는 휠체어를 타면서부터 어느새 사라지고, 내 귀에는 오히려 비굴할 정도의 슬픈 목소리로 들린다.
“그래, 엄마. 남편 시간 되는지 물어볼게.”
엄마가 얼마나 어렵게 꺼낸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사무적으로 냉정하게 대답을 하고 만다.
휠체어를 타기 전에 엄마는 딸에게 이런 부탁을 할 필요도 비굴해질 필요도 없었다.
두 다리가 망가지면서 걷지 못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우리 부부가 엄마의 두 다리가 되어 주지 못하면 엄마는 혼자서 현관문조차 나갈 수가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에 혼자서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며 하던 일들을 꼭 우리 부부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더구나 남에게 신세지는 일을 무지 싫어하던 성품이었는데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일일이 남의 손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이 엄마에게는 너무 슬픈 일이었을 텐데... 그 마음을 알면서도 자식이라는 게 좀 상냥하게 말해 주면 좋으련만... 참, ...
엄마가 휠체어 생활을 한 뒤로 엄마를 모시고 미용실에 가는 일은 여간 번잡스럽기 짝이 없는 일 중에 하나였다. 그 번잡스럽다 못해 불편한 감정이 고스란히 마음 한구석에서 훅 치고 올라왔다.
‘머리 스타일 아직 괜찮은데…’라는 생각과 번잡스러운 감정이 드는 순간, 그만 해서는 안 될 말을 또 내뱉고 말았다. 눈치 빠른 엄마가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테고... 엄마는 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흐렸다.
“미안하다… 귀찮게 해서…”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비굴해지는 듯한 엄마의 모습에 왜 화가 나는지... 나도 내 감정을 잘 알 수가 없다. 엄마는 죄인인 양 고개를 숙이고 있고, 그 모습에 더 화가 나고... 해서는 안 될 말을 또 하고 말았다.
“엄마!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마요! 뭐가 귀찮아요! 안 귀찮아요!”
“그래, 알았어…”
풀이 죽을 대로 죽은 엄마는 마치 ‘나 잡아 먹어라’라고 하는 듯 체념하며 힘없이 대답을 했다.
내가 왜 그러는지 나도 알 수가 없다. 그냥 상냥하게 말하면 어디 덧나나... 참, 못된 딸이다.
며칠이 지나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엄마와 미용실을 가기로 했다.
“엄마, 남편이 지금 시간이 된대. 지금 미용실 가자!”
“그래!”
엄마는 며칠 전의 감정은 다 잊은 듯 어린 아이처럼 활짝 웃어 보였다.
드디어 우리 부부와 엄마는 미용실 가는 대장정에 오르게 되었다.
보행기조차도 탈 수 없는, 휠체어로만 움직일 수 있는 엄마의 바깥 나들이는 남편 없이 나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휠체어를 밀고 주차장으로 가고, 엄마를 안아 차 뒷좌석에 앉히고, 휠체어를 접어 트렁크에 싣고 부릉부릉~~~. 미용실에 도착하면 다시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꺼내고, 엄마를 안아 휠체어에 앉히고, 미용실 안까지 모셔다 드리고, 우리 부부는 부릉부릉~~~ 차를 몰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머리를 다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는 옆에서 말만 거들 뿐 이 모든 것들은 남편이 홀로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도 남편은 군소리 한 번 하지 않고 무거운 엄마를 번쩍 들어올리며 “어머니, 나 믿고 꼭 잡아요!”라고 하며 엄마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런 사위가 든든했는지 엄마는 “그럼, 내가 자네를 안 믿으면 누굴 믿어!”라고 하며 편안히 자신의 몸을 사위에게 맡겼다.
미용실 안에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엄마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엄마, 머리 다하면 전화해!”
“어, 알았어!”
“엄마! 예쁘게 해요!”
“그래.”
미용실 안에 있는 엄마는 엄마가 아닌 가슴 설레는 여자였고 사춘기 딸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 부부는 엄마에게 전화가 올 때까지 대기 중이다.
따르릉~ 따르릉~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다 했어?”
“그래!”
파마를 하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엄마의 목소리가 한결 밝고 우렁찼다.
전화를 끊자마자 우리 부부는 부리나케 차를 몰아 다시 미용실로 향했다.
미용실 안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엄마는 마치 볼 빨간 수줍은 소녀처럼 보였다.
“엄마, 엄마 머리가 라면이야! 언제 끓였어 ㅎㅎㅎ”
“그래~.”
실없는 나의 농담도 거뜬히 받아 칠 정도로 엄마는 새로 한 파마 머리가 무척 마음에 들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엄마는 기분이 좋은지 노래까지 불렀다.
언제나 그랬듯이 엄마의 머리 스타일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꼬들꼬들하게 끓인 라면 같은 머리 ㅎ. 내 눈에 머리 스타일이 조금 굽실굽실해지면서 예뻐질라 치면 또 다시 미용실에 가서 뽀글뽀글 볶는 엄마. 엄마는 왜 맨날 머리카락을 뽀글뽀글 볶는지... 그리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엄마 스타일이라 뭐라 할 순 없지만... 참...
그런데 그걸 또 티를 내는 딸, 나는 왜 그럴까?
그냥 맘에 안 들더라도 “엄마, 머리 너~무 예뻐요!”하고 말 한마디 하면 어디 덧나나… 참, 못된 딸…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엄마가 아닌 한 여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 엄마도 여자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엄마에게 “엄마, 파마 너~무 멋있어요!”라고 말하지 못했던 나. 참, 그렇게 밖에 할 수가 없었나... 참, 못된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