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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고백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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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재 Oct 21. 2024

엄마, 기저귀 차야 해요!

어쩌지…

엄마는 부지런하다 못해 극성맞기까지 했다.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봄에는 쑥, 돌나물, 명아주 잎들을 뜯어 왔고, 여름에는 마당 가득히 상추, 오이, 고추들을 심었고, 가을에는 가로수에 즐비하게 떨어져 있는 은행을 주어 왔다. 아마도 엄마 생각에 돈으로 귀한 것은 사주진 못해도 조금 부지런만 떨면 돈 하나 안 들이고도 본인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꽁꽁 얼어붙는 겨울을 빼고는 지천에 널려 있는 식물들을 볼 때마다 엄마는 자식들이 생각났을 테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온갖 극성을 다 떨며 사방팔방을 헤집고 다녔던 것 같다.

자식에 대한 모성애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무서웠다.


사달이 난 그날도 엄마의 모성애는 온 극성을 떨고 있었다.

모두들 곤히 잠들어 있는 이른 새벽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은행을 주워 온 것이다.

내 자식들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마음에 다른 사람들이 다 주워가기 전에 이른 새벽 잠도 설치며 얼른 주워와야 했을 것이다. 분명 어제저녁 엄마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빠르게, 남보다 먼저 은행을 주울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이미 다 짜놓았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눈뜨자마자 깜깜한 새벽을 제일 먼저 열고는 숨 쉴 새도 없이 재빠르게 거리로 나갔을 것이다. 지천에 깔려 있는 은행들을 보면서 엄마는 아마도 눈부신 보석을 본 것처럼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마음 든든해했을 것이다. 내 눈으로 직접 보진 않았지만 은행을 줍고 있는 엄마의 행복한 미소, 아니 한 알이라도 놓치기 싫은 엄마의 강렬한 눈빛에 두 눈을 뜰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잠결이었다.

마당에서 수돗물 소리가 콸콸 들려왔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보니 역시나 꼬리꼬리한 은행 냄새에 둘러 쌓인 엄마가 보였다.

두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 은행 씻는 일에 열중한 나머지 내가 곁에 서는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엄마, 냄새 안 나?”

내 물음에 그제야 엄마는 뒤를 돌아보았다.

“많지!”

나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는 바구니 가득 담긴 은행을 들어 보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으쓱한 어깨, 자랑스러워하는 눈빛에서 엄마가 얼마나행복 해하는지 짐작이 갔다.

꼬리꼬리한 은행 냄새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참, 냄새도 안 나는지 엄마는 수돗가에 앉아 연신 은행의 냄새를 빼고 있다.

그것도 쪼그리고 앉아서…


결국 그 일로 사달이 나고 말았다.

수돗가에서 은행을 깨끗이 씻느라 오래도록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것이 엄마의 무릎에 무리가 갔던 것이다.

단순히 이번 일로 무릎이 망가진 건 아니었겠지만, 계속해서 오랜 시간 쪼그리고 앉아 은행을 닦아댔으니 무릎이 나가고 만 것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엄마도 분명 나처럼 무릎 관절이 안 좋았던 것 같다. 분명 엄마 자신도 무릎이 안 좋은 것을알고는 있었을 텐데 자식들 먹여 살리는 것이 우선이니 무릎 관절이 상하 건 말 건 신경을 전혀 쓰지 않았던것 같다.


엄마의 무릎이 더 이상 버텨주질 않았다.

결국 엄마는 보행기에 몸을 의지한 채 걸어 다녔다.

활달한 엄마의 바운더리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 되고 말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서글펐을까!

사방팔방 뛰어다니다시피 자유롭게 날아다녔는데 좁아진 바운더리 안에 갇혀 눈물을 훔치진 않았을까!

다리를 다치고 난 뒤 자유롭지 않은 내 다리를 경험하면서 엄마의 서글픈 그때 감정을 헤아리지 못했으니… 자식이란 게… 참…


아마도 비탈길도, 계단도 엄마에게는 고행과도 같은 무지 험난한 길이었을 것이다.

특히 화장실을 자주 가는 엄마에게 집이 아닌 바깥나들이는 아주 큰 맘을 먹지 않고는 선뜻 나서기 무서울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에서도 툭툭 털어버릴 만큼 단단한 엄마인지라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엄마는 씩씩하게 동네 산책을 즐겼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보아서는 안 될 것 같은 광경을 보게 되었다.

바지는 흥건히 젖은 상태로 보행기에 몸을 의지한 채 어그적 어그적 걸어오는 엄마의 모습은 충격이다 못해 순간 깊은 슬픔으로 내리 꽂혔다.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내 촉은 틀리지 않았다.

화장실을 갈 시간도 없이 소변을 참지 못해 그만 바지에 소변을 본 엄마.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아, 글쎄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엄마는 무안한 듯 침착한 목소리로 애써 웃으며 말했다.

엄마의 미소 속에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더욱더 슬펐다.

슬픈 감정을 철저하게 가린 채 나도 아무렇지 않은 듯 침착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괜찮아.”

“응, 괜찮아!”

“그래, 바지 벗어서 빨면 되지!”   

“그래! 그러면 되지!”

엄마와 딸은 별 일 아닌 듯 툭툭 털어버렸다.

아니 엄마나 딸 모두 마음속으로는 울고 있었을 것이다. 그냥 서로에게 상처되지 않도록 꾹꾹 감정을 누르며 말한 것뿐일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래도 엄마가 기저귀를 차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근데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상처받을 텐데…

어쩌지…

어쩌지…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몇 번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생각에 잠겼다.

엄마가 느낄 자괴감이 나의 슬픔이 되어 꼬박 밤을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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