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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고백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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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재 Oct 14. 2024

엄마, 정말 좋아요?

딱 2년만...

“진짜, 딱 2년만 저 인간 안 보고 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친정 엄마는 이 이야기를 노래처럼 늘 했다.

그런데, 진짜 어느 날 친정아버지는 바람처럼 사라지고 엄마는 혼자가 되었다.

엄마의 소원대로 되었다.

딸인 내 눈에 엄마는 하늘을 날 듯 정말 행복해 보였다.

한동안 아버지 없는 삶을 제대로 만끽하는 것처럼 보였다.

콧노래를 부르고 얼굴에 웃음 기가 떠나질 않았다.

‘아버지가 곁에 없는 게 저렇게도 좋으실까... 그래도 돌아가셨는데...’

하지만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 짠한 마음까지 들었다.


어려서 아버지와 엄마와의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다 알 순 없지만 엄마가 아버지 때문에 속상해하던 날들이 많았음을 눈치로 알고는 있었다.

어렸을 적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는 일을 하긴 했지만 평생 돈과는 거리가 먼 아버지였다. 일은 하지만 평생 빚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편, 어디 기댈 때 없는 빡빡한 삶을 살면서 엄마의 삶은 점점 거칠어져 갔고,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남편을 투명인간 취급을 하면서 ‘무능한 양반’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생각이 난다.

아버지와 엄마, 큰오빠, 언니, 나 모두 이른 새벽에 아현동 고개를 리어카를 밀며 넘어가던 때.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그 일이 그렇게 고단한 일인 줄도 모르고 마냥 그 깜깜한 새벽에 가족들과 함께 리어카 소풍을 나간 것처럼 너무 재미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서 리어카를 끌고 가던 아버지가 멈춰 서서는 이렇게 힘든데 박카스를 안 챙겨 왔다고 엄마에게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더 이상 리어카를 몰 수 없다고 하면서 리어카를 휙~ 벗어던지고 가는 것이었다. 엄마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리어카 앞자리로 가서 리어카를 끌기 시작했다. 큰오빠와 언니는 아무 말 없이 리어카 뒤에서 리어카를 밀기 시작했다. 나도 큰오빠와 언니 옆에 딱 달라붙어 종종 따라가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오로지 시장으로 가기 위해 깜깜한 새벽을 넘어갔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의 슬픈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나도 아버지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데, 엄마는 아버지가 얼마나 미웠을까... 야속했을까...


하지만 다 커서 한 남자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아버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방법은 잘못되었지만 내 생각에 아버지는 엄마의 사랑이 늘 배고팠던 것 같다. 늘 무능하다고 핀잔만 받고, 자녀들 앞에서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지고, 본인을 전혀 바라보지 않는 아내에게 애끓는 사랑을 구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눈에도 분명 아버지는 엄마와는 달랐다. 언제나 ‘아내 바라기’였을 정도로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로부터 인정받기를 누구보다 원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던 아버지가 내가 대학 시절 무렵부터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고, 술로 인해 일주일에 5일 정도 인사불성 상태로 지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서러움, 외로움을 술로 달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날에는 외할머니, 엄마, 나는 숨죽여 아버지가 술에서 깨기만을 기다렸다.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으니..., 엄마는 어땠을까? 자식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고스란히 가슴에 안고 불나방처럼 타닥타닥 타 들어가진 않았을까?  

어쩌면 나보다 훨씬 더 아버지가 미웠기 때문에 “제발, 저 인간 없이 살고 싶다.”고 말한 게 아닐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2년, 엄마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지긋지긋한 남편 없이 살아보고 싶다는 소원대로 엄마는 씩씩하게 행복해 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이 될 무렵 어느 날, 엄마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어제 꿈에는 니 아버지가 나타났어.”

“그래, 엄마! 반가웠겠다!”

“그러게. 지긋지긋해서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는데 반갑더라 ㅎ.”

“엄마도 이제 철이 들었나 보네 ㅋ.”

나의 어쭙잖은 농담에도 웃어 보이며 엄마는 말한다.

“그래, 이제 나도 니 아버지 보러 천국 가야지...”

“엄마, 아버지가 보고 싶어요?”

“보고 싶네. 그 인간 천국에서는 부지런히 일하는지...”

“나도 아버지 보고 싶네!”

“그래, 나도 그 인간 보고 싶네...”


남편이랑 살아보니 미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제일 나를 사랑해 주고 나를 위해 마음 써 주고 하는 사람은 남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엄마도 아버지 없이 2년 정도 살아보니 그래도 남편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한 것 같았다. 옛날 어르신들 말에 내 곁에서 ‘내 등 긁어 줄 사람’, ‘내 말 들어줄 사람’은 오직 남편 밖에 없다는 말을 실감한 것 같았다.

아무리 우리 부부랑 귀여운 손녀랑 한 집에서 같이 산다 해도 우리가 남편만큼이야 했을까? 어렸을 적 아버지는 엄마가 뭐라고 해도 늘 웃으며 “참...”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곤 했다(술에 취하면 달랐지만).  그러나 자식이라는 것이 “엄마! 뭐 이상한 말을 다 하고 그래요!”라고 핀잔만 늘어놓을 뿐, 아버지처럼 “참...”하고 웃어넘기는 일이 없었으니, 2년 만에 엄마가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새삼스럽지도 않을 일이었다. 우리랑 한 지붕 밑에서 살고는 있지만 엄마의 마음 한구석에는 ‘등 긁어 줄 사람’, ‘말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아마도 무지 외로웠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들을 내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아버지에 대한 서운한 감정, 다하지 못한 이야기, 심지어는 아버지에 대한 칭찬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어제 꿈에서도 아버지를 만났어. 잘 있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뭐랬어?”

“잘 있다고 했지.”

“그랬더니 아버지가 뭐래?”

“아무 말 없이 씨익 웃더니 사라지더라.”

“좋았겠네!”

“응, 좋았어..”


엄마의 행복한 미소가 내 가슴에 살포시 와 앉았다.

따뜻하게...




* 표지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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